[바람이 일어나다] 화가의 일생… 창작을 위한 치열한 구도(求道)
매체명 : 법률신문   게재일 : 2024.04.08   조회수 : 36

캔버스 위 새로운 세계관

창조하려는 열정으로

불꽃 튀는 생애를 보내는

화가의 삶은 범상치 않다

세인들이 땅을 내려다볼 때

예술가는 하늘을 우러러본다

 

화가의 삶은 범상치 않다. 하얀 캔버스 위에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려는 열정으로 불꽃 튀는 생애를 보낸다. 세인(世人)들이 땅을 내려다볼 때 예술가는 하늘을 우러러본다. 기행(奇行)을 부린 화가도 더러 있다. 평생 가난에 시달렸던 당대의 무명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는 귀를 잘랐고 조선후기의 천재 화가 최북(1712~1760)은 자기 눈을 찔러 애꾸가 되었다. 물론 활화산처럼 끓어오르는 에너지를 내면에 감추고 겉으로는 평온한 도인처럼 살다 간 화가도 적잖다.

 

지난 겨울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장욱진(1917~1990) 회고전을 두 번 봤다. 관람객들로 얼마나 붐비는지 전시실마다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미술에 관심을 가진 일반인들이 갈수록 늘고 있음을 실감했다. 장욱진 화백의 생애에 대해서는 여러 평전을 통해 익히 알고 있다. 서울대 미대 교수직에서 스스로 물러나 화업에 전념했고 삐쩍 말라 허약한 듯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청소년 시절에 체조 선수로 활약했다. 어린 아들을 먼저 저세상으로 보내는 참척(慘慽)을 겪었다. 여러 화가들과 함께 프랑스 루브르 미술관에 가서 볼 것 없다면서 입장하지 않았다는 일화도 있다.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1886~1965)의 생애를 담은 평전 춘곡 고희동살아서는 고전, 죽어서는 역사는 선구자의 도전적인 삶을 잘 그렸다. 그는 13세 때 한성법어학교에 들어가 프랑스어를 원어민 교사에게서 배웠다. 프랑스 화가가 교장의 초상화를 그린 그림을 보고 서양화의 매력에 사로잡혔다. 도쿄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공부해 화가가 되었다. 1920년 동아일보 미술기자로 일하며 창간호 디자인을 맡았다. 훗날 예술원 초대 회장, 민주당 참의원 등을 역임해 관운도 좋았다. 국제미술계에서 유창한 프랑스어를 구사해 이목을 끌었다.

 

한국 현대조각의 선구자 김종영(1915~1982)의 글을 묶은 조각가 김종영의 글과 그림1983년에 처음 나온 이후 2005년에 개정판이, 또 작년에 증보판이 출간됐다. 증보판 서문에서 조각가 최종태 교수는 김종영 선생은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가장 높은 조각가로 평가되었을 뿐만 아니라 문장을 통해서 예술가의 사상과 인품에 관하여 세상이 주목을 더하고 있다고 썼다. 이 책엔 드로잉, 수채화, 수묵화도 여러 점 소개돼 있다. 서울대 미대 교수로 봉직한 김종영은 여러 제자들에게 존경받는 훌륭한 스승이었다.

 

세계 최고령 화가 김병기(1916~2022)의 일대기인 바람이 일어나다106세에 타계한 화가의 장대한 예술도정을 그리고 있다. 저자 김형국 서울대 명예교수가 화가와 평창동에서 이웃해 살며 수십 년간 나눈 대화를 기록했다. 절친한 동갑내기 화가 이중섭(1916~1956)보다 두 배 반이나 더 살았다. 1954년 예술원이 창립할 때 미술인 회원으로 고희동, 장발, 이상범, 손재형, 윤효중 등 5명이 뽑혔다. 김병기는 6위 득표여서 아슬아슬하게 떨어졌다. 훗날인 2017년 김병기는 101세에 예술원 회원으로 선출됐다. 그때 그는 언론 인터뷰를 거절했다. “장수 비결이 무엇인가?”를 물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단다. 김병기 화백은 미국에서 49년간 활동했기에 국내에서는 기반이 취약했다.

 

100세 이상 장수한 한묵(1914~ 2016) 화백은 홍익대 교수라는 안정적인 지위를 버리고 1961년 프랑스로 건너가 평생 파리에서 활동했다. 1969년 인간의 달 착륙에 큰 감명을 받아 우주 공간을 소재로 한 추상화를 주로 그렸다. 파리에서 필자도 한묵 화백을 몇 차례 만났는데 우주, 생명, 영원성 등 고차원 사유(思惟)를 형상화하는 데 관심을 보였다. 이중섭과의 교유 관계를 묻자 요절한 친구를 그리워하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고승철 언론인·저술가·전 동아일보 출판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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