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한국 지성의 몰락] 지성 회복이 상생의 길(상)
매체명 : 오케이뉴스   게재일 : 2023.08.28   조회수 : 59

'21세기 한국 지성의 몰락' 펴낸 송호근 한림대 석좌교수 인터뷰

 

송호근 한림대 석좌교수가 새 저서 21세기 한국 지성의 몰락을 나남출판사에서 지난 25일 펴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에서 좌우 갈등의 격화로 인해 지난 36년 동안 공공 지식인’(public intellectuals)이 몰락했다고 지적한 책이다. 동시에 지성의 회복을 통해 좌우 대립을 극복할 상생의 활로를 찾고자 하는 공론장(公論場) 도 제시한다.

 

송 교수는 지난 27일 전화 인터뷰에서 제목이 엄청나게 과격한 표현이라고 인정하면서도 그 피치 못할 까닭을 설명했다. “다른 지식인의 업적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냐라는 비난이 많을 것 같고, 너만 잘났니, 너만 앞을 보고 있는 것이냐라는 비난도 있을 것 같다. 실제로 지식인들이 한 일도 있는데 모두 무화(無化)시키는 오만한 표현이 아니냐는 비난도 있겠다. 내 내부에서도 그런 반론이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할 말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회학자이자 칼럼니스트, 소설가로 활동해 온 송 교수는 이번 책에서 우선 공론장(公論場)의 저질화를 대놓고 지적했다. ‘한국의 공론장(公論場)은 사상과 고뇌의 깊이가 없다. 파수꾼이 사라져버렸다. 파수꾼이 없다면 공중의 교양 수준이라도 고양됐어야 하건만, 감정 배출의 수문이 열려 버린 한국에서 자체 검열을 기대하기는 난망한 일이다.

 

민주주의 전제 요건인 자제(自制)는 없다. 공중의 검열 기제인 정치인, 언론, 교수, 종교인,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앞장서서 깨트렸다. 한국의 민주화는 폭로의 과정이었다. 기득권 집단이 일차적 타깃이었다. 장막을 벗겨보니 사회적 존경을 누렸던 집단들의 내부 사정은 그야말로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지성인이란 말이 사라졌다

 

송 교수는 집필 동기와 관련해 전화 인터뷰에서 실은 지성이라는 게 혼자 만드는 게 아니잖은가. 여러 군데서 어우러지다 보면, 그 문제 제기된 것들의 공유 영역이 생겨나고 그 공유 영역에서 이른바 지성이나 시대진단이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갖게 되잖는가라고 물었다.

 

그게 과거로부터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어떤 시대이든 그런 현상이 생겨나고 그게 더 커지면 한 시대를 이끌어가는 중심 가치가 되어 왔잖은가. 그게 반드시 옳은 것이 아닐 수도 있고, 옳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런 것을 다 겪고 난 20세기를 되돌아보고, 우리가 너무 압축적으로 겪어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지만, 1987년 이후 민주주의 36년을 지내면서 그래도 제가 느꼈던 바는 '지성인'이라는 말 자체가 오염이 돼서 사람들이 더 이상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송 교수는 지난 겨울 집필한 이 책을 통해 한국 사회는 민주화 36년을 통해 공공 지식인이 몰락하는 과정을 겪었다고 진단했다. 송 교수가 언급한 공공 지식인은 사회현상을 정확히 파악하는 매의 눈, 그것을 종합하는 총체적 분석력을 갖추고, 공중을 설득하는 대중적 글쓰기에 능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공공 지식인의 존재가 기이하게도 사그라들었다는 것이다. 민주화 이전엔 대학이 학문의 도량이었고, 시대의 지성으로 꼽힌 교수들이 있었지만, 민주화 이후 지식인들이 좌우 정권의 진자(振子) 운동에 휩쓸려 정파적으로 갈리면서 스스로 권위를 상실했다. 정치권에 흡수되지 않은 채 대학에 남은 교수들은 대학 경쟁력 강화라는 요청에 시달리면서 논문제조기로 전락한 채 현실의 공론장에서 동떨어진 그들만의 세계에 안주하고 있다는 것.

 

송 교수는 책에서 공공 지식인의 공백 상태를 '온갖 유형의 변사(辯士)'들이 채우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여행·취미·상담 전문가·정치 평론과 해설가·이념투사·프로파일러, 그 밖에 전문가연하는 온간 유형의 변사(辯士)들이 진을 친 공론장 개입은 (지식인들에게) 득보다 실이 많다. 자신도 모르게 이념 좌표에 찍히거나 욕먹을 각오를 해야 한다. 심지어는 신상 털기를 당한다. 현대판 인민 재판인 좌표 찍기는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배설의 정화조가 된 공론장

 

송 교수는 전화 통화에서 상대방을 폭격해서 무너뜨리는 것이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배타적 특성이 됐다라고 개탄했다. 좌우 정권 교체를 좌우 진자 운동이라고 표현한 송 교수는 좌로 가면 우측이 무너지고 우로 가면 좌측이 무너졌다라면서 정권을 잡아서 성급하게 뭔가 세우려다 보니 기초가 흔들리고 초법적인 짓들을 많이 했다라고 좌우를 모두 비판했다.

 

지금 보니까 민주주의 36년 동안 공론장에서 뭔가 생겨났는데, 다 무너뜨리고 잿더미로 변했다. 흔히 말하는 취향이라든가 각종 전문가들이 등장해서 춤을 추고 있다. 자본주의의 춤이다. 메시지의 상업화가 엄청나게 이뤄지고 그걸 통해 생계를 유지하거나 대중적 인지도를 높이는 게 성행했다. 내가 책에서 배설의 정화조라고 표현했다. 모든 사람이 들어와서 가래침을 뱉어낸다. 거기까지는 좋다. 사회의 중심축이 무너진 것을 본 사람들이 환호했는데 이제 믿을만한 게 뭐가 있을까, 회의(懷疑)가 자라나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든다. 뭘 믿고 사나. 내면은 허전하다. 그런 내면을 위로해주거나 성찰하게 해주는 힘이 지성인데, 지성은 다 무너졌고 허전하다. 그러니까 그 내면 공간을 들여다보면 그 허전함을 채우려고 엄청난 물질적 욕망들이 자라나고 있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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