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석 칼럼] 한국전쟁 이야기 <상> 김일성은 몰라도 너무 몰랐다
매체명 : 중앙일보   게재일 : 2009-06-19   조회수 : 5021
『콜디스트 윈터-한국전쟁의 감춰진 역사』의 저자 핼버스탬에 따르면, 한국전은 미국에게 ‘잊고 싶은 전쟁’이다. 9년을 끈 베트남전 때 미군 5만8000여명이 전사했다면, 한국전에서는 3년에 3만6000여명이 죽어갔다. 그만큼 한국전은 혹독했다. 하지만 사회적 인식은 훨씬 덜하다. 베트남전이 TV로 중계된 ‘요란한 전쟁’이었지만, 한국전은 그 이전 상황이었다. 그 결과 한국전쟁은 현재까지 2차 대전·베트남전 사이의 ‘낀 전쟁’으로 남아있다.

문제는 한국이다. 올해로 59년을 맞는 한국전 성격을 우리가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일까? 사회적 공감에 앞서 ‘인식의 내전’이 진행 중인 것은 아닐까? 이를테면 젊은이들은 남침·북침을 헷갈리고, 일부 학계는 아직도 북한의 민족해방론을 들먹인다. 더 많은 지식인들은 1980년대 수정주의를 대표하는 브루스 커밍스 『한국전쟁의 기원』, 와다 하루키 『한국전쟁』만을 좋은 책으로 안다. 최근 10년 내외 연구에 대한 정보는 빈칸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수정주의(revisionism)란 기존의 정통학설( ‘한국전쟁은 스탈린 주도의 국제전’이라는 해석)을 수정하며 등장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즉 커밍스·와다는 스탈린 음모보다는 주로 내전과 계급전쟁·민족해방의 각도에서 한국전쟁을 해석했는데, 지금은 이미 낡았다. 사실(史實)관계도 잘 맞지 않는다. 그러면 지난 10년의 연구 성과를 집약하는 책, 국제학계에도 널리 통하는 저술은 어떤 것일까? 연세대 교수 박명림의 『한국 1950 전쟁과 평화』『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 두 권이다.

이 책에 따르면 냉전시대의 최대 분수령인 한국전은 내전·국제전 성격을 함께 가졌다. 전쟁모의의 과정도 내전·국제전 성격이 뒤섞여있다. 즉 김일성은 스탈린의 단순 하수인이라고 보면 안 된다. 오히려 그가 이니셔티브를 쥔 채 앞장서서 움직였고, 김일성의 잇단 ‘재촉’에 스탈린이 ‘동의’했고, 마오쩌둥이 ‘양해’하는 묘한 구조였다. 이 과정에서 분명해지는 건 김일성의 실체다.

당시 서른여덟 살 애송이였던 그는 민족해방이라는 섣부른 도그마에 사로잡힌 채 죽은 레닌의 말을 믿고 대형 사고를 쳤던 장본인이다. 레닌은 “사회주의자에게 내전이란 전적으로 정당하며 진보적”이라고 외치지 않았던가! 문제는 김일성은 몰라도 너무 몰랐다. 전쟁지휘관으로서 응당 갖췄어야 할 한반도의 지정학과 국제정치학에는 완전 제로였다.

그렇기 때문에 “미군 개입은 절대 없다. 3주면 끝낸다”면서 전쟁을 일으키는 ‘무모한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 결과 이 나라를 참화의 나락으로 밀어 넣었고, 지금으로 이어지는 분단체제를 강화한 사람이다. 그는 생각 이상으로 지략과 안목이 모자랐지만, 용렬하기까지 했다.

다음 회에 한국전쟁 흐름의 디테일을 확인해보면 그게 금세 드러난다.

조우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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