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두완 회고: 앵커맨의 삶과 꿈] “韓방송, NHK · BBC공영성 따라가려면 한참 멀어 ”
매체명 : 문화일보   게재일 : 2022.11.08   조회수 : 101

자서전 앵커맨의 삶과 꿈대한민국 1호 앵커봉두완

 

왜곡편파보도 용납하기 힘들어

어느 순간부터 공영방송 안 봐

 

당시엔 언론이 독존하지 않고

국가 장래와 밀접하다고 생각

민주주의를 聖書처럼 여겼다

 

 

우리 방송은 아직 일본 NHK나 영국 BBC의 공영성을 따라가려면 한참 멀었습니다. 선배로서 사실을 왜곡하고 과장하는 편파 보도를 용납하기 힘듭니다.”

 

최근 자서전 앵커맨의 삶과 꿈’(나남출판)을 출간한 대한민국 1호 앵커봉두완(88·사진)8일 문화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국내 방송 보도의 문제점을 이렇게 지적했다. ‘팩트가 아닌 정권에 휘둘리는 방송이 민주주의를 퇴행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어느 순간부터 (KBS·MBC ) 공영방송을 멀리하고 있다요즘엔 가톨릭평화방송(cpbc)을 보면서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접한다고 전했다.

 

1969년부터 10년간 TBC 저녁 뉴스와 라디오 뉴스 전망대를 진행한 봉두완은 1980년 언론통폐합 후 정계에 뛰어들어 11·12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정계를 떠난 뒤에는 라자로마을돕기회장, 천주교 북한선교후원회장, 대한적십자사 부총재 등을 역임하며 소외된 이웃을 위한 봉사에 매진했다. 책은 언론·정치·종교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든 자신의 인생 발자취와 함께 현대사의 굵직한 인물에 얽힌 에피소드를 흥미진진하게 펼쳐낸다.

 

봉두완은 당시에는 언론이 결코 독존(獨存)’하는 게 아니라, 국가와 민족의 장래에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고 믿었다민주주의를 성서(聖書)처럼 귀하게 여기며 열심히 뛰었다고 회고했다.

 

동화통신 정치부 기자를 거쳐 한국일보 워싱턴 특파원으로 활동했던 봉두완이 마이크를 잡게 된 배경에는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과의 인연이 있다. 언론인으로 이름을 날리던 봉두완은 당시 여러 신문과 기업으로부터 받은 영입 제안을 모두 거절했다. 하지만 일찍부터 그를 눈여겨본 이 전 회장이 내기 골프까지 제안하며 끈질기게 회유하자 마음을 고쳐먹었다. 삼성그룹의 TBC 방송 합류로 쓰는 기자에서 기자 출신 앵커맨 1가 된 것이다. 봉두완은 아나운서가 뉴스를 줄줄이 읽던 관행에서 벗어나 적절한 해석을 곁들이는 논평으로 화제를 모았다. 1960년대 후반 박정희 정권의 3선 개헌에 반대하며 매 맞아 죽을 각오로솔직한 논평을 방송에 내보낸 건 지금도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린다. 시청자들은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듯한 시원함을 느꼈지만, 서슬 퍼런 독재 정권의 분위기 탓에 저 앵커가 계속 방송을 할 수 있을지 1만 원 내기를 할 정도였다고 한다. 거침없는 논평을 지켜본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봉두완을 불러 실제로 독재를 해볼까라며 간담 서늘한 농담을 던졌다. 이에 봉두완은 대통령 그만두고 야당 당수나 해달라며 언론인 특유의 날카로운 반골 기질을 드러냈다.

 

이와 함께 책은 김대중 대통령 당선 직후 김수환 추기경이 거행한 축하 미사에서 김대중과 낙선한 야당 총재 이회창의 화해를 연출한 장면, 평화의 상징인 빨간 적십자 모자를 쓰고 한센병 환우를 위해 봉사한 기억을 차례로 풀어낸다. 봉두완은 전쟁을 딛고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우뚝 선 대한민국 현대사에 작은 보탬이 됐다고 자부하며 이렇게 말한다. “인생 90을 참 잘 살았다. 이제 남은 며칠, 몇 달, 몇 년을 어떻게 하면 잘 보낼까 궁리한다. 하늘나라를 궁금해하면서.”

 

 

 

앵커맨의 삶과 꿈.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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