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우스 브리더
매체명 : 인터넷문학방송   게재일 : 2010-07-09   조회수 : 4098
마우스 브리더
하아무 소설집 / 나남 刊

작품 이외에 작가의 말이 필요한가? 그렇지 않다고 배웠고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다. 그런데도 뭔가 자꾸만 주절거리게 된다. 뱀다리, 나의 세 번째, 아니 세 번째는 이미 있으니 네 번째 다리다. 비겁한 변명일 뿐이라고 일축해도 좋고, 악플보다 무섭다는 무플식 무시도 좋다. 그러면 나도 더 마음놓고 주절거릴 수 있을 테니까. 주절주절주절. 그것이 따바리로 XX 가리는 소리라 타박할지라도 꿋꿋하게 주절주절주절. (중략)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소설집을 묶기로 결정하고 나자 이상하게도 맥이 탁 풀려버렸던 것이다. 1년 내에 책을 내는 조건으로 얼마간의 발간비를 지원받기로 했는데도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마지막 순간까지도 책을 묶어 세상에 내어놓아야 하는가 반추를 거듭했다. 얼마나 되씹고 곱씹었으면 더 이상 씹을 건덕지조차 없을 정도가 되었지만 그래도 하릴없이 그러고만 있었던 것. 주구장창 쪼물락거리고 있으니까 급기야 주위에서 "그만 곱씹고 이젠 뱉어버려!", "시원하게 눈 딱 감고 싸버려!" 막말을 해대기조차 했다. 할까 말까 엉덩이를 까 내리고 앉은 모양새를 들켜버렸으니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 중에도 그는 써야 할 작품 구상에 골몰해 있었다. 장편소설이었는데, 이제껏 그가 써왔던 이야기와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지리산 일대를 돌며 한국전쟁 전후 피해자 실태조사를 한 적이 있었다. 함양을 중심으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 활동을 한 것을 비롯해 산청, 진주, 하동 등에서 200여 명의 노인들로부터 증언을 수집하고 채록했던 것이다. 보도연맹 관련자들을 비롯한 사상 의심자로 몰린 민간인들이 군경에 의해 집단학살된 사건, 그에 대한 보복으로 빨치산에 의한 학살사건, 그리고 누구에 의한 것인지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조차 없는 학살 등 그 참상은 기존 소설이나 수기, 영화 등에서 본 것 이상이었다.
그렇게 상상 이상의 참극을 듣고 그는 도무지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방법이었다. 기존 분단문학에서 다루어왔던 방식으로는 쓸 수 없었고, 그들의 필력이나 성과를 뛰어넘을 수 있었는 재능이 자신에게 없다는 것도 분명했다. 단순히 기존에 나왔던 것과 다른 피해 사례만을 나열한다는 것은 무의미했던 것이다. 현대적이고 무언가 달라야 한다. 세대를 뛰어넘어 요즘 세대도 읽을 수 있어야 하고 내용도 형식도 새로워야 한다. 하지만 그의 뱁새 다리로 그 모든 문제를 뛰어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슬슬 가랑이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 하아무, <작가의 말> 중에서

2010.07.09 인터넷문학방송 드림서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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