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정신적 모태' 제헌헌법을 뒤돌아보다
매체명 : 조선일보   게재일 : 2010-01-09   조회수 : 5610
제헌과 건국
한국미래학회 편|나남|360쪽|1만8000원

한국미래학회(회장 전상인)는 작년 창립 40주년을 맞아 연세대 법학연구소와 함께 《제헌과 한국, 그리고 미래한국의 헌법구상》 학술회의를 열었다. 대한민국의 초기 국가 건설자들이 어떤 뜻과 무슨 생각을 헌법에 담고자 노력했는지를 분석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정신적 모태를 되돌아보려는 노력이었다. 정치학·법학·사회학 등 각 분야 연구자들이 참여한 학술회의가 지향한 것은 한국판 《페더럴리스트 페이퍼》였다. 미국의 건국자들이 헌법 제정을 둘러싸고 건국 방향을 모색한 《페더럴리스트 페이퍼》는 지금도 미국 사회 통합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학술회의 발표자이자 이 책 필자들인 김성호·전광석·함재학(이상 연세대) 서호철(한국학중앙연구원) 신우철(중앙대) 이근관·정인섭(이상 서울대) 교수 등은 제헌헌법이 1948년 두어달 만에 갑작스레 만들어진 게 아니라 역사적 뿌리를 갖고 있다고 강조한다. 신우철 교수는 1945년 해방 직후에 쏟아져 나온 헌법 초안들과 임시정부 시기 헌법 준비 문서들, 19세기 말의 원시헌법문서들을 현재의 대한민국 헌법과 연결해낸다. 정령 14조 홍범 14조 헌의 6조 대한국국제 9조 같은 원시헌법문서들이 내세운 대외적 주권독립 확보는 1919년 한성정부 약법과 임시헌장에 계승됐고, 해방 이후 좌·우 양측의 헌법초안들과 제헌헌법에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김성호 교수는 미 군정기와 제헌국회에서 논의된 헌법안을 분석하면서 우리 헌법이 의원내각제와 대통령제 사이의 혼합적 권력구조를 채택하고 있는 것은 경로의존적 특성을 지닌 것이라고 설명한다. 상해임시정부 시절 다섯 차례에 걸친 제·개헌 과정에서 의정원을 중심으로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적 특성이 혼합된 권력구조를 채택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1948년 건국헌법이 채택한 혼합적 대통령제를 단순히 개인의 권력의지나 정파 간 타협의 산물로만 설명할 수 없으며, 현재의 개헌 논의도 교과서적 헌정공학 차원에서만 다루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우리 헌법이 무미건조한 법률 조항만으로 채워진 것이 아니라, 선인들의 치열한 논쟁과 역사가 묻어 있는 산물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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