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책임한 다중(多衆) 횡포, 인터넷 민주주의 위협"
매체명 : 조선일보   게재일 : 2009-08-26   조회수 : 5280
임혁백 교수 "사이버 토론 수준 높이는 시민성(市民性) 교육 필요"
중진 정치학자 임혁백(57) 고려대 정책대학원장은 최근 펴낸 저서 《신유목적 민주주의》(나남출판사)에서 한국을 신(新)유목적 민주주의가 가장 활성화된 나라로 꼽는다. 한국은 IT혁명과 세계화의 세례를 받으면서 세계 어느 나라보다 더 빨리 정주(定住)사회에서 신(新)유목사회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임 교수는 "인터넷과 휴대폰, MP3 같은 유목 물품을 갖춘 신유목민들은 빠른 소통과 대화를 시도하는 속도 정치로 신유목적 민주주의를 가꿔나가고 있다"고 했다. 거의 모든 정당과 국회의원들이 각자 홈페이지를 만들어 선거운동을 하고, 당원 및 지지자들 간 의사소통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임혁백 고려대 정책대학원장 임 교수는 25일 인터뷰에서 "대의민주주의의 결함을 보완하고 시정하는 데 인터넷민주주의가 기여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욕설과 비방이 활개치는 우리 인터넷 문화에서 민주주의의 심화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물론 사이버 에티켓이 자리 잡지 못한 인터넷 공간에서는 독단적이고 무책임한 다중(多衆)의 횡포가 일어날 가능성이 큽니다. 사이버 공간을 다중이 지배하게 되면 신중한 토론과 협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의견이 난무하게 되고 상호모순적이고 무책임한 언술이 전자공간을 지배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이버 공간의 통신 에티켓 확립은 단순한 예절의 문제가 아니라 신유목적 민주주의 실현에 매우 중요한 관건이라는 것이다.

사이버 공간에서 벌어지는 토론의 깊이가 얕고, 걸핏하면 싸움으로 번지는 것도 문제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토론은 대개 통합과 수렴보다는 극단적 대결로 치닫고 있어요. 중도적 의견을 제시하더라도 양극단에서 끊임없이 시비를 걸기 때문에 점차 중도는 사라지고 양극(兩極) 대결이 지배적이게 됩니다." 임혁백 교수는 "사이버 토론의 심의성(審議性)을 높이기 위해서는 시민성(civility)을 고양하는 정치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시민성은 규칙을 따르고 예의를 갖춘 시민들이 대화·토론·심의를 통해 모든 문제를 폭력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해결하고, 정당하고 정통성 있는 국가의 권위를 존중하며, 법을 인식하고 인정하며 존중하는 태도와 행태를 가리킨다. 이런 시민성을 기르기 위해 무엇보다 학교에서 효율적이고 실천적인 시민정치 교육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임 교수는 또 신유목시대를 맞아 한국이 취해야 할 국가전략으로 세계의 사람과 물적 자원이 한국으로 들어와서 다시 세계로 퍼져 나가는 중추(中樞) 국가를 제시한다. 이는 지난 정부에서 추진한 동북아 중심국가와 비슷하게 들린다. 그러나 임 교수는 "한국이 동아시아에서 중국·일본과 세력 균형을 이루려면 한·미동맹을 강화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게 다르다"고 말한다. 중국과 일본은 인구·자원·경제력·군사력에서 한국을 압도하기 때문에 미국의 힘을 보태는 게 필수적이라는 얘기다. 임혁백 교수는 "미국의 시대가 끝났다거나, 제국은 무너졌다는 식의 반미(反美) 성향 학자들 언급은 성급한 판단"이라면서 "이런 얘기가 일부 국내 반미 지식인의 입맛에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현실은 그와 다르게 움직이고 있다"고 했다. 오바마 정부 출범에서 보듯, 미국의 헤게모니는 유연하게 리모델링이 이뤄져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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