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배 "언론노조 파업은 저널리스트 영혼 담긴 것"
매체명 : 프레시안   게재일 : 2009-02-27   조회수 : 5314
김중배 대기자는 언론인으로 살아온 날이 그렇지 않은 날보다 곱절이나 많다. 그리고 그 상당 기간을 암울한 독재 시절 하에서 보냈다.

펜이 꺾이고 양심이 뜯기는 시절이었지만 "설령 입술은 떨려도 역사의 진실만은 떨릴 수 없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는 그의 깐깐한 곤조는 사회에 대한 기자로서의 역할을 저버리지 않게 했다. 그렇게 그는 50년을 넘게 언론인으로 한국 사회에서 살아왔다.

김중배 대기자를 기리고자 지난 1월 <대기자 김중배 신문기자 50년>라는 이름으로 책 한 권이 발간됐다. 독자에게 숨통을, 기자에게 부끄러움을 안겨준 그의 글이 다시 책으로 엮여 세상에 나온 것.

지난 26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는 그의 책 출판을 축하하는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고광헌 한겨레신문사 사장과 엄기영 문화방송(MBC) 사장을 비롯해 김학천 건국대 교수, 손석춘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등이 이 자리에 참석했다.

"저널리스트에게 영혼이 없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우연하게도 이날은 지난 25일 직권 상정된 미디어 관계법으로 MBC 노조가 총파업을 시작한 날이었다. 그래서인지 이날 주인공이었던 김중배 대기자는 "영혼이 있는 기자가 되어 달라"고 후배 기자들에게 당부했다.

그는 "민주화된 세상이 다시 반동의 시대로 접어든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며 "미디어에 종사하는 이들이 이 반동을 극복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언론노조 파업과 관련해서 "파업은 지금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대응 전략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러한 대응 저변에는 저널리스트로서의 영혼이 작동하고 있다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김중배 대기자는 "정권이 바뀐 뒤 공무원들에겐 영혼이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충격을 받았다"고 밝힌 뒤 "그런데 더 큰 충격은 이 땅의 저널리스트들에게도 영혼이 없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점이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미디어 관계법과 관련해 "뒤집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방송국에 대자본이 진입하는 제도가 논란이 되는 지금의 상황에 대해 나름 해석을 해보았다. 어쩌면 이 제도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은 진즉부터 기자들에겐 영혼이 없다고 생각한 건 아닐까.

이들은 방송의 소유구조가 바뀌면 기자들의 생각도 바뀐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물론 이 제도를 막기 위한 저널리스트들의 영혼은 살아있다. 하지만 우리가 건너편을 향해 팔매질만을 할 게 아니라 우리에게도 팔매질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주언론의 불길은 타오르고 있는가."

시종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진행되던 출판 기념회장은 순간 정적이 흘렀다. 그는 이어 "사실 어떤 시대나 언론 독립에 대한 도전은 끊이지 않았다"며 "민주 언론의 종착역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오늘 현실은 더욱 급박하다"며 "모든 후배들이 나를 밟고, 나를 뛰어 넘어 민주언론의 길로 나아가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언론의 공공성 지켜나가는 길이 대선배의 길을 따르는 것"

이날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고광헌 한겨레신문사 사장은 김중배 대기자를 선지자였다고 회고했다. 그는 "과거 90년대 초반에 김중배 대기자는 앞으로 언론은 정치가 아닌 자본과 힘겨운 싸움을 벌일 것이다고 예견했다"며 "신문은 이미 대부분 자본의 손에 넘어갔고 이제 방송마저도 자본에 넘어가도록 정치가 이를 합법화하고 있다"고 탄식했다.

고 사장은 "하지만 언론은 아무런 대책도 없고 부끄러움도 모르고 싸우지도 않는다"며 "대선배의 말을 따르지 않아서 이렇게 된 거 같아 부끄럽다"고 사죄했다.

엄기영 문화방송(MBC)사장도 "요즘처럼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니 김중배 전 사장이 지금 사장으로 있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그의 빈자리를 아쉬워했다. 김중배 대기자는 2001년부터 2003년까지 문화방송 사장을 역임한 바 있다.

엄 사장은 "(언론의)공공성을 지켜나가는 길이 김중배 전 사장이 우리에게 주문한 것이고 우리가 안고 있는 과제"라며 "이를 완수하는 길만이 바른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다짐했다.

이날 출판기념회에 김중배 대기자는 "면구스럽다"는 이유로 오지 않겠다고 했으나 후배 기자들의 간곡한 부탁 끝에 참석했다. 그의 책도 마찬가지였다. 김중배 대기자는 끝내 책 발간을 허락하지 않았지만 후배와 지인, 동료들이 김중배 기자 50년 기념집 발간 위원회를 구성해 만들었다.

발간위원회는 책을 낸 배경과 관련해 "김중배 기자의 글을 묶어 과거로 보내는 고별의 책이 아니라 그의 글과 정신을 찾아내 미래로 띄어 보내는 책"이라고 밝힌 바 있다.

김중배 대기자는 1934년 광주에서 태어나 1957년 한국일보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했다. 이후 동아일보 논설위원(73~86년)과 편집국장을 거쳐(90년)을 거쳐 한겨레신문 편집위원장(93년)과 대표이사 사장(93~94년)을 역임했다.

이후 1994년부터 2001년까지 참여연대, 언론개혁시민연대 등 시민단체의 대표를 맡았다. 2001년부터 2003년까지는 문화방송 대표이사 사장을 역임했다. 2004년부터 지금까지 언론광장 상임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 김중배 대기자가 출판 기념회에 참석한 동료, 후배 언론인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있다. ⓒ프레시안

▲ 이날 임옥상 화백이 김중배 대기자에게 기념품을 건냈다. 기념품에 적힌 글귀를 설명하고 있는 임옥상 화백(오른쪽). ⓒ프레시안

/허환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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