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韓)·일(日) 학자들, 국적 떼고 역사를 말하다
매체명 : 조선일보   게재일 : 2008-11-11   조회수 : 5950
독도, 야스쿠니(靖國)신사, 위안부(성노예), 교과서 등의 문제는 한·일 양국 관계에서 늘 불거지는 역사 관련 최대 현안이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원장 강종희)이 최근 기획해 출간한 연구서 《한국과 일본의 역사인식》(현대송 엮음, 나남 刊)은 양국의 권위자들이 참여해 이 문제들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곧 영문판으로도 나올 예정이다.

◆독도―우산도는 조선 땅이었다

독도 문제에서 역사적 근거를 둘러싼 쟁점은 ▲한국 고문헌에 등장하는 우산도(于山島)가 독도인지 울릉도인지의 문제 ▲1900년 대한제국 칙령에서 울도 군수의 관할로 된 석도(石島)가 독도인지 관음도인지의 문제 ▲태평양전쟁에서 한일기본조약에 이르는 일련의 조치의 해석을 둘러싼 대립 등이다(현대송 일본 도쿄대 교수).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의 전거가 되는 것은 우산도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설인데, 조선 정부가 15세기부터 독도를 우산도로서 자국령이라고 인식한 것은 분명하다(호리 가즈오 일본 도쿄대 교수).

1695년 12월 25일 일본 돗토리(鳥取)번이 로주(老中·에도 막부의 정무 총괄직)에게 보낸 회답서에는, 다케시마(竹島·현재의 울릉도)와 마쓰시마(松島·현재의 독도) 모두 지배지가 아니라고 썼다. 독도가 일본의 고유 영토라는 설은 이로써 부정되는 것이다(나이토 세이추 시마네대 명예교수).

◆야스쿠니 신사―군국주의는 사라지지 않는다

A급 전범 14명이 합사(合祀·둘 이상의 혼령을 한곳에 모아 제사를 지냄)된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 총리의 참배로 인해 번번이 외교 문제가 되고 있다. 2만여 명에 이르는 한국인 합사자에 대해 한국인 유족이 합사 취소를 요구하고 있지만, 신사 측은 "전사한 시점에서 일본인이었으므로 어쩔 수 없다"는 논리로 거부하고 있다. 전범을 일본 군국주의의 지도자로서 치켜세우는 일본의 역사관이 변하지 않는 한 합사와 참배는 계속될 것이지만, 향후 더욱 심각한 외교 문제로 발전할 수 있다(다카하시 데쓰야 도쿄대 교수).

◆위안부―日정부가 직접 운영·통제

위안부 문제의 두 가지 핵심 논쟁은 ▲강제 연행이 있었는가 ▲일본 우익의 주장대로 공창(公娼)이었기 때문에 국가의 법적 책임이 없느냐는 것이다. 전체 피해자의 80% 정도를 차지하는 취업사기나 인신매매 등의 방식은 분명 강제 연행의 일종이다. 업자에게 영업을 허가했던 공창과는 달리 국가(군·정부)가 직접 위안소를 운영하거나 통제·감독했으므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 역시 명백하다. 그런데도 일본 정부는 책임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윤명숙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관).

◆교과서―역사갈등 제어 시스템의 붕괴

한·일 양국은 1990년대 중반 자유민주주의체제와 시장경제를 함께 지향한다는 동류의식을 지니게 됐고 역사인식에서도 서로 접근했다. 하지만 2001년 일본 문부과학성이 후소샤(扶桑社) 《새 역사교과서》의 발행을 용인하면서 다시 문제가 불거졌다. 일본은 한국의 근대화를 위해 애썼으나 한국이 받아들이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병합했다는 식의 의도적인 왜곡과 폄하 앞에서 양국의 역사 갈등은 심화됐다. 갈등을 적절한 수준에서 제어해 왔던 시스템이 붕괴돼 버린 것이다.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와 공용 역사교재 편찬 등 역사 대화의 문을 열고, 상대방의 역사와 문화를 다양한 시각에서 유연하게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정재정 서울시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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