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연구, 지성사 되다
매체명 : 한겨레신문   게재일 : 2011-06-07   조회수 : 2777
박명림 ‘역사와 지식과 사회-한국전쟁 이해와 한국사회’
이념 굴레 벗어나 학문과 사회관계 탐구 나서

한국전쟁은 우리의 현재에 영향을 줬던 모든 사건들 가운데 가장 결정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전쟁이 초래한 피해의 규모를 넘어, 두 한국이 아직도 겪고 있는 분단과 대결이라는 현실과 따로 떼어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집중적으로 연구가 이뤄졌어야 하는 분야지만, 오히려 체제 경쟁의 틈바구니 속에서 이념에 휘둘렸던 역사가 있었다.
한국전쟁 연구의 대가로 꼽히는 박명림(사진) 연세대 교수가 한국전쟁에 대한 연구의 흐름, 곧 한국전쟁 학지사(學知史)를 정리한 책을 펴낸다. <역사와 지식과 사회-한국전쟁 이해와 한국사회>(나남 펴냄)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단순히 연구 경향의 흐름만 나열하지 않고 학문과 사회가 어떤 관계에 놓여왔는지 또한 앞으로 어떤 관계를 추구해야 하는지 등을 탐구한 책이다.

박 교수가 분석의 대상으로 삼는 시기는 주로 1980년 ‘광주항쟁’ 때부터 최근까지 30년이다. 이전 한국전쟁 연구는 주로 무비판적 냉전반공주의의 영향 아래에 놓여 있었고, 광주항쟁을 겪은 80년대에야 ‘인식의 전환’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당시 폭발한 현대사 연구에 대한 관심의 밑바탕에는 민족과 민중을 내세운 ‘운동’의 흐름이 있었다. 다만 민족해방이냐 민중민주냐 등 노선마다 필요에 따라 ‘꿰어맞추기’식으로 역사를 풀이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박 교수는 “80년대 국내 연구에서 가장 뒤처진 부분은 역시 관심의 제고와 시각 전환을 넘는 사실의 발굴과 정리, 이론과 방법의 영역이었다”고 말한다. 급진주의적 시각으로 이뤄진 연구들이 나타났지만, 과거 반공주의를 대체할 정도로 객관적 평가를 받은 단독연구는 없었다는 것이다.

한국전쟁 연구의 수준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린 것은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이었다. 커밍스는 미국 비밀자료와 북한 노획문서 등 폭넓은 자료 발굴로 연구 주제와 시기, 영역을 대폭 확장했고, 미국에 대한 급진적 비판을 통해 기존의 친미-반공주의적 연구 접근법에서 탈피했다. 당시로선 획기적이었다. 학제적·융합적 연구의 시작을 열기도 했다.

급진구조주의적 관점에서 이뤄진 커밍스의 연구는 한국전쟁 연구에 질적 도약을 가능하게 했지만 한계 또한 존재했다고 한다. 한국전쟁의 원인을 한국 사회의 내적 모순에서 찾고 한국전쟁에 대해 김일성-스탈린-마오쩌둥의 합의된 전략을 간과했다거나, 미국의 개입에 대한 강한 비판을 앞세운 나머지 북한 체제에 대한 비판 지점들을 놓치는 모습도 보였다.

그 뒤 현실사회주의 붕괴라는 또 한 차례의 전환을 통과하며, 한국전쟁 연구는 이념의 영역에서 크게 벗어날 수 있었다는 것이 박 교수의 풀이다. 인물과 마을 연구 등 세세한 차원에까지 연구가 세밀화됐고, 전통주의니 수정주의니 하는 낡은 틀은 큰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됐다는 것이다. 다만 박 교수는 “한국전쟁 연구가 보편의 광장으로 나아가려면, 철학적이며 해석적인 문제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한국전쟁이 남긴 유산은 평화와 인권을 어떻게 이룰 것이냐의 문제로 이어져야 하며, 이념적 굴레가 벗겨지는 최근에야 보편적 인간의 문제로서 한국전쟁 연구가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한 일간지는 이 책의 출간에 대해 “박명림 교수가 친북에 빌미를 제공했던 브루스 커밍스를 강도 높게 비판한다”며, 커밍스 연구의 한계를 지적한 부분을 부각시켜 보도했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아직도 학문을 이념으로 재단하는 경향이 남아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책머리에서 박 교수는 “언론이 주도하는, 사실보다 주장을 우선하고 진실보다 이념을 우선하는 현상은 이제 병리적 수준”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최원형 기자
이전글 <300자 책읽기>육당 장손이 조부 친일행적 반박
다음글 “육당의 꿈은 조선의 세계화, 친일은 오해입니다”
prev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