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독 방한> 종편 등 신문·방송 겸영하는 미디어
매체명 : 경향신문   게재일 : 2011-10-30   조회수 : 2691
ㆍ세계적 미디어 정치경제학자 그레이엄 머독

“미디어가 시장논리만을 따라 구성된다면 시민들이 필요한 자원을 확보하거나 특히 민주주의 정치 참여를 저해하는 요소가 많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세계적인 미디어 정치경제학자 그레이엄 머독 영국 러프버러대 교수(65·사진)는 30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종합편성채널 등 신문·방송을 겸영하는 미디어 교차 소유에 대해서도 “겉보기에 좋고 경영적 측면에서는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여론의 다양성을 위협하고 있다”고 말했다.

“방송뿐 아니라 신문·잡지 등 다양한 언론을 소유하고 있는 루퍼트 머독의 미디어 경영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사유화된 미디어가 독재적 권력을 가지고 있으며, 오너의 영향이 언론에까지 끼치고 있습니다.”

저서 <디지털 미디어 시대와 미디어 공공성: 미디어, 문화, 경제>(나남)의 출간에 맞춰 한국을 방문한 그는 정치경제학적 시각의 비판적인 미디어 연구로 주목받아왔다. 머독 교수는 영국의 상황을 예로 들면서 “한국의 종합편성채널 탄생에는 정치적 배경이 작용할 수 있었고, 영국은 미디어 환경을 시장에 맡겨버린 차이가 있지만 다양성의 침해라는 부분에서는 똑같다”고 말했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익스프레스와 지상파방송 채널5를 함께 소유하고 있는 리처드 데스몬드는 연예인 소식을 전하는 잡지의 콘텐츠를 방송하는 채널을 하나 더 만들려고 합니다. 상업적 목적에서는 완벽한 아이디어죠. 그러나 그 채널에 다른 목소리가 들어올 수 없도록 일종의 창구를 막아버리는 셈입니다. 다양성에 부정적인 영향이 우려됩니다.”

머독 교수는 영국에서도 이러한 교차 소유에 대해 시민들이 문제의식을 가지고 개선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미 강력한 입지를 지닌 언론재벌이 있기에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어발식 미디어 경영이야말로 부패의 온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이 더 문제”라며 “최근 루퍼트 머독이 일으킨 사건들은 이를 잘 보여준다”고 말했다.

하지만 더 많은 채널의 허용과 시장논리에 따른 자유로운 미디어 환경이 다양성에 긍정적인 역할을 보여준다는 주장을 하는 이들도 있다. 머독 교수는 “인터넷만 봐도 실질적으로 4~5개의 사이트가 독점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무제한의 사이트 개설이 가능한 인터넷이지만 “독점과 권력 집중이 일어난다”는 점을 봐도 텔레비전 채널의 증가가 다양성을 보장해주지는 못한다는 지적이다.

머독 교수는 대신 ‘디지털 공유지’라는 개념을 주창한다. 공영방송과 같이 국가와 시장 영역 모두에서 자유로운 공공부문이 서로 연계를 강화해 활성화돼야 한다는 것이다. 공공도서관이나 위키피디아, 대학 등과 더불어 다양한 사회운동과 이해집단, 공동체들을 연결하는 링크를 발전시켜 만든 이 ‘디지털 공유지’는 국가와 시장 영역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울타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한국은 공영방송의 독립성이 취약해 정부의 입김이 크게 작용한다. 정부를 비판하는 이들은 출연조차 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머독 교수는 “공영방송이 국영화되고 정부 비판적 프로그램이 압력을 받는 것은 많은 국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고전적인 사례”라며 “그 누가 집권하든 정부는 호시탐탐 공영방송을 이용해 정책을 유지하려는 성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국가도 시장도 아닌 공간을 제공해주는 것은 공영방송밖에 없습니다. 권력에 휘둘리지 않는 공영방송을 만들기는 쉽지 않지만 싸워야 합니다.”

머독 교수는 영국의 공영적 민영방송 ‘채널4’를 예로 들면서 시장에 모든 것을 맡겨두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독립제작 프로덕션 육성을 목적으로 100% 외주제작만을 방송했던 이 채널은 초창기에 광고 직접판매를 못했다. 최근 영국 정부는 직접판매를 허용했지만 이에 타격을 입은 것은 이미 직접판매를 하고 있던 상업방송들이 아니라 채널4 자체였다. “공공채널은 광고를 직접판매해도 힘 있는 상업채널과의 경쟁 자체가 어렵습니다.”

머독 교수는 미디어가 대중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어떤 성향을 갖거나 어떤 소유 구조를 갖느냐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가디언은 진보적 목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수익이 나면 바로 신문 경영에 다시 돌린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신문을 신뢰합니다. 이익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다른 진보 매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실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머독 교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뉴미디어가 위력을 발휘한 한국의 서울시장 선거를 인상 깊게 지켜봤다며 이를 “상업적 시스템이 지배하고 있는 미디어 환경에 침투한 셈”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도 SNS 등 뉴미디어의 힘을 빌려 당선됐지만 이후 인기도 떨어지고 진보적 정책을 추구하지도 못하고 있다”며 “선거 후에도 선출된 권력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방향으로 SNS 등이 사용되지 못한다면 그저 과대평가된 것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2011.10.30. 경향신문/글 황경상·사진 김영민 기자 yellowpi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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