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소도蘇塗, 등대섬
세상의 끝에서 피어난 사랑과 환대
대하장편 《소설 예수》(전 7권)를 통해 2,000년 전 인간 예수의 삶을 조명하며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질문했던 윤석철 작가는, 신작 《등대섬》에서 같은 물음을 오늘의 삶 한가운데로 불러온다.
도망치듯 섬을 떠났던 목사 현우가 다시 등대섬으로 돌아온다. 남쪽 바다 끝, 배를 타고 겨우 닿는 등대섬은 죄인조차 품어주었다는 고대의 성역 소도(蘇塗)와 닮아 있다. 세상의 주변부로 밀려난 이들이 마지막으로 흘러든 이 작은 섬에서, 사람들은 구태여 사연을 캐묻지 않고 서로의 존재를 받아들인다. 거룩한 교리보다 삶으로 서로를 지탱하는 사람들. 그들 앞에서 현우는 다시 묻게 된다. 교회의 울타리 밖에서도, 혹은 그것이 사라진 이후에도 우리가 서로 사랑하며 살아갈 이유는 충분한가.
《등대섬》은 한 공동체가 형성되고 비워졌다가 다시 채워지는 순환의 시간을 그려내며 우리 시대가 잃어버린 사랑과 환대의 의미를 다시 묻는다.
◉ 출판사 리뷰(예스) / 출판사 제공 책소개(알라딘) / 출판사 서평(교보)
“사람이 가고 오고, 마을과 마을을 잇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야 비로소 길이 된다”는 윤석철 작가의 믿음은 전작 《소설 예수》에서부터 신작 《등대섬》에까지 이어진다. 더불어 사는 삶에 천착해 온 작가의 신앙에 대한 탐구는 늘 경계 위에서 이루어져 왔다. 《소설 예수》에서 구원의 메시아도 그리스도도 아닌 ‘인간 예수’의 삶을 복원하고자 했던 그는, 《등대섬》을 통해 다시 한번 통념의 경계를 넘어선다. 교리의 바깥에서 예수의 가르침이 어떻게 현현할 수 있는가. 작가는 세상 밖으로 밀려나 등대섬을 찾은 이들의 삶을 통해 신앙이 나아갈 곳을 비춘다.
등대섬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목사 현우는 그 경계에 서 있다. 그는 신학적 가르침과 섬사람들의 삶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한다. 삶의 밑바닥을 지나온 사람들 앞에서 신앙의 언어는 자주 힘을 잃고, 현우는 자신이 붙들어 온 믿음과 현실의 삶 사이의 간극을 마주하게 된다. 그의 흔들림은 끝내 이런 질문에 닿는다. 기독교라는 제도 종교의 울타리 밖에서도, 혹은 그것이 사라진 이후에도 우리는 서로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는가.
상흔의 기억, 켜켜이 쌓여 등대섬의 시간이 되다
소설은 또한 섬사람들이 품고 살아온 기억을 통해 한국 현대사의 상처를 조용히 비춘다. 전쟁과 폭력의 시대를 지나온 사람들은 그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삶 속에서 오래도록 삭혀 간다. 마치 작은 항아리에 담아 두듯 기억을 다스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남편과 시아버지를 전쟁 속에서 잃은 황씨 할머니의 긴 침묵과, 광주의 어느 날 이후 한쪽 다리를 잃고 절뚝거리며 살아온 ‘그집 김씨’의 이야기는 그렇게 섬의 시간 속에 쌓여 공동체의 기억으로 이어진다.
저무는 시간 가운데 반짝이는 등대 불빛
《등대섬》은 한 공동체가 만들어지고 비워졌다가 다시 이어지는 순환의 시간을 따라가는 이야기다. 세월이 흐르며 마을은 늙어 가지만,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삶과 기억은 또 다른 이들에게 전해지며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낸다.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등대는 이러한 세계를 비추는 상징이다. 그 빛은 누군가를 이곳으로 부르는 신호가 아니라, 각자가 어디에 서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가늠하게 하는 불빛에 가깝다. 어둠 속에서 방향을 잃지 않도록 조용히 비추는 등대처럼 《등대섬》은 우리에게 묻는다. 사람이 사람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 시대에 사랑과 환대는 어떤 방식으로 가능한가.
◉ 책 속에서
말하지 못한 세월을 가슴에 품고 살아온 섬사람들, 지나온 날들과 희망 없는 현실을 눈앞에 펼쳐놓은 채 함께 울고 있는 그들에게, 기독교 의식을 치른다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 울음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 빈 바다, 72쪽
달빛 아래 다음 파도가 넘실 눈앞에 다가왔다. 파도가 허연 배를 드러내며 몸을 비틀고 뒤집어지기 전에 타고 넘어야 한다. … 그저 힘이 덮쳐오는 방향으로부터 벗어나야 할 뿐이다. 경계를 지키기로는 바다나 섬이나 한마음이었다.
— 빈 바다, 86쪽
“우리 등대섬에는 굳이 하느님이 직접 나서서 하실 일은 없어.”
아버지의 말대로 등대섬 사람들은 그렇게 살았다. 교회가 들어올 때 극렬하게 반대한 사람도 없었고, 대단한 경사라고 흥분하는 사람도 없었다. …
“교회가 섬 안으로 슬그머니 끼어들어 왔지.”
— 빈 바다, 93쪽
예수가 메고 처형장을 걸어 올라갔던 그 나무 형틀은 이제 기독교라는 종교를 믿는 모든 이가 각각 자기 어깨에 메고 가야 할 고통의 몫이 되었다. … 2천 년 동안 차곡차곡 쌓인 역사는 누군가를 일으켜 세우기도 하고, 때로는 눈보라 치는 벌판으로 홀로 내몰기도 했다.
— 다시, 닻을 내리고, 169쪽
“길이란 관계다. 마을과 마을, 섬과 섬을 연결하고,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잇는단다. 그중에서도 중요한 건 사람을 잇는 길이지.”
평생 등대섬 어부로 바다 밑바닥을 들여다보며 그물을 내리던 아버지는 잔잔하든 출렁이든 삶 속에서 무얼 먼저 건져 올려야 할지 깨우쳐 주었다.
— 마지막 신호, 212쪽
할머니는 처절한 기억을 잊지도, 그 기억에 짓눌려 살지도 않았다. 조그만 항아리에 담아 두고, 고통을 다스리며 살아왔다는 이야기였다. 누군가는 그 기억을 간직하고 아파해야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는다.
— 작은 항아리, 239쪽
어른들은 밤새 마을 위를 휙휙 지나가는 등댓불을 보면서 있어야 할 것이 제대로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그제야 잠자리에 들었을 것이다. 세상 모든 기준이 뒤집히고 무너지고, 어떤 제도도 그들을 끌어안지 않아서 등대섬까지 밀려왔는데, 등대 불빛마저 사라진다면, 그분들은 다시 어둠 속에 내몰려 끝없이 덜덜 떨었을 것이다.
— 저무는 시간, 2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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