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신 안에” ―볼테르
궁극적 진리의 빛을 향한 말브랑슈의 지적 탐구
17세기 프랑스 철학자이자 신학자 니콜라 말브랑슈(1638~1715)의 대표작 《진리의 탐구》(1712)가 국내 최초 완역되었다. 말브랑슈는 결코 철학사의 단일한 계보로 환원되지 않는 미지의 사상가이다. 신실한 사제였고, 데카르트의 계승자였으며, 신학과 철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였다. 《진리의 탐구》 원서의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인간 정신의 본성과 학문적 오류를 피하기 위해 정신을 사용하는 방식’에 대해 논함으로써, 중세 스콜라 철학에서 근대 철학으로의 이행이 본격화된 시기 인식론과 형이상학의 종합을 이루었다.
그는 결벽에 가까운 집요함으로 초판 발행 이후 말년에 이르기까지 평생에 걸쳐 수정과 보완을 거듭했는데, 그간의 판본들을 종합하여 분석해 낸 완전판을 번역한 것이 본 작이다. 《진리의 탐구》는 말브랑슈 전 생애의 철학적 사유의 집약이자, 철학사 상 가장 중대한 분기점이라 할 수 있는 중세에서 근대로의 전환기의 사유를 고스란히 담아 낸 사상사적 문헌이라 할 수 있다.
◉ 출판사 리뷰(예스) / 출판사 제공 책소개(알라딘) / 출판사 서평(교보)
급진적 회의에서 보편적 진리로, 말브랑슈의 독자적 인식론
《진리의 탐구》는 인간 인식에 대한 급진적 회의에서 시작한다. 말브랑슈는 우리가 진리를 소유한다고 믿는 순간, 이미 오류의 문턱에 들어섰다고 본다. 감각은 우리를 기만하고, 상상력은 혼란을 초래하며, 순수 이성마저 오류에 빠진다는 것이다. 그의 인식론적 회의는 단 하나의 진실, ‘우리는 신 안에서 모든 것을 본다’라는 명제에 도달한다. 이는 개별자들의 인식의 한계 너머 보편성을 확보하려는 철학적 시도이다. 진리는 그 자체로 필연적 완결성을 담보해야 하므로, 절대자라는 보편 이성의 영역에 자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불완전한 인식에서 출발하여 완전한 앎, 진리의 빛에 이르기까지 말브랑슈는 기존 교회의 전통이나 유명 사상가들의 권위에 기대지 않았다. 그의 사상적 근원이 되었던 성 아우구스티누스나 데카르트조차도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신의 질서에 합당한가’, 그것이 말브랑슈의 절대적 기준이었으며, 신만을 진리의 근원으로 삼았다.
철학과 신학을 가로지르는 참된 앎을 향한 지적 여정
말브랑슈가 오랫동안 철학사의 각주에 머물렀던 것은, 그가 기존의 철학적 학파에 온전히 귀속되지 않는 사유를 전개했기 때문이다. 말브랑슈는 신앙적 믿음과 이성적 논증 사이에서 타협하기는커녕 오히려 둘의 긴장을 극대화하며 독자적 철학 체계를 정립해 나간다.
신학과 철학을 넘나들며 참된 앎을 향하는 지적 여정에서 말브랑슈는 ‘모든 것은 신 안에서 인식된다’라는 단 하나의 가설 아래 인식론의 핵심 쟁점을 짚어 나간다. 그가 의제로 삼았던 ‘인식의 오류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진리는 어떤 근거 위에서 인식 가능한가’라는 질문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인식론의 논점이다. 말브랑슈는 《진리의 탐구》를 통해 이러한 물음들을 집요하게 논증하며, 인간 인식의 한계와 가능성을 다각도로 사유하고자 했다. ‘진리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으로 시작하여 신학·철학·수학·천문학을 아우르는 야심찬 지적 탐구의 여정의 끝에는 ‘모든 것은 신 안에’라는 단 하나의 진리의 빛이 자리한다.
◉ 책 속에서
1권 10쪽
인간의 정신은 지고한 존재와 결합함으로써 만물 위로 높아진다. 그 결합을 통해서 생명이며, 빛이며, 지복을 얻는다.
1권 153쪽
그러나 우리의 시각은 이 모든 아름다움을 우리가 보지 못하게 감춘다. 우리가 감탄해야 마땅한 신의 이 모든 창조물을 경시하는 것이다. 이 동물들이 우리 신체와 비교해서 작으므로, 우리의 시각은 그 동물들을 절대적으로 작다고 간주하게 했고, 그다음으로는 신체들이 그 자체로 작을 수 있기라도 했던 것처럼 그 동물들의 작은 크기 때문에 경시되어 마땅하다고 간주하게끔 한다.
2권 149쪽
신학의 분야에서라면 고대를 사랑해야 한다. 진리를 사랑해야 하고, 진리는 고대에 있기 때문이다. 일단 진리를 손에 넣고 나면 호기심은 완전히 중단되어야 한다. 그러나 철학의 분야에서는 반대로, 항상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탐구하고, 진리에 대한 호기심을 가져야 하는 것과 같은 이유로 새로움을 사랑해야 한다.
2권 334~336쪽
그러므로 정신이 사물의 존재 방식을 보는 것은 자기 자신 내부나 자기 스스로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 점에서 어떤 다른 것에 달린 것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 우리는 신의 내부에서 모든 것을 보게 된다.
4권 130쪽
데카르트는 사물의 본성을 올바로 이해하려면 사물의 기원과 사물의 생성 시 가장 단순한 것인 사물들로 항상 시작하고, 우선 원칙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신이 가장 단순한 방식으로 창조물을 조금씩 지었던 것인지, 단번에 창조물을 만들어 냈는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신이 창조물들을 어떤 방식으로 지었든지, 그의 창조물을 잘 알기 위해서는 우선 그것의 원칙을 고려해야 했고, 우리가 생각했던 것이 신이 창조했던 것과 일치하는지 나중에 신중을 기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5권 160쪽
나는 사물의 관념은 불변하며, 진리와 영원한 법칙들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확신한다. 그것들이 지금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리라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나는 내 안에서 불변하는 것도 필연적인 것도 전혀 보지 못한다. 즉 나는 존재하지 않거나, 지금 그대로의 나로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과는 다른 진리며 법칙을 볼 수 있는 정신은 존재할 수 없음을 내가 확신하니 말이다. (…)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묻는 이성은 불변하고 필연적인 이성이라고 결론 내려야 한다.
5권 229쪽
질서에 따라 영혼과 신체의 결합의 법칙은 대단히 단순해야 하므로 그 법칙들은 대단히 보편적이어야 한다. (…) 이들 경우에 이성은 감각을 도우러 오게 되는데 우리는 어떤 경우에서든 이성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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