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사랑의 의미를 일깨운 ‘시대의 지성’
김동길의 삶을 그의 목소리로 다시 듣는다!
《김동길 육성: 이게 뭡니까》는 말과 글로 자유와 사랑의 가치를 설파한 ‘시대의 지성’ 김동길의 삶을 담은 회고록이다. 김동길의 문하에서 수십 년간 가르침을 받은 김형국 서울대 명예교수가 그가 남긴 칼럼과 저술 등을 모아 엮었다. 일제강점기 평양에서 보낸 학창 시절부터 해방과 김일성 체제 체험, 월남, 6.25전쟁, 연세대 교수 시절, 유신독재 반대, 투옥, 재야 지식인의 길, 생의 마지막 성찰에 이르기까지. 김동길이 어떻게 자신의 사상을 형성하고, 자유와 사랑을 실천하며, 역사를 증언해 왔는지 총체적으로 펼쳐 보여 준다. 단순한 연대기적 사건 나열을 넘어 격동의 시대를 살아온 한 지식인의 성장과 고뇌, 깨달음의 과정을 차분히 되짚는다. “개인사는 사회사와 맞물린다는 명제에 가장 적실한 경우가 김동길”이라는 편저자의 말대로, 이 책은 지식인의 사회적 역할을 몸소 실천해온 김동길의 회고록이자, 한국 현대사의 결정적 순간을 담은 역사적 기록이다. 이 책을 통해, 독자는 역사와 개인, 사상과 삶이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 그리고 우리 역사와 인생에서 자유와 사랑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깊이 성찰하게 될 것이다.
◉ 책 소개글
말의 힘으로 세상을 일깨운 ‘논객 김동길’
“이게 뭡니까”라는 특유의 언사를 즐긴 김동길은 한 시대를 풍미한 저명한 논객이었다. 정확한 언변, 정연한 논리, 기발한 유머, 깊은 통찰은 그를 따를 자가 없었다. 대학 강단에서 신문 칼럼, 방송 스튜디오, 거리의 연단까지, 그는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믿으며, 무엇을 지키려 했는가?
혹자는 그가 보수 진영의 논객이라고 주장하지만, 그의 발언은 단순한 진영 논리 이상의 가치를 담고 있었다. 김동길의 화두는 언제나 ‘자유’와 ‘정의’였고, 이를 실천하고 알리는 일이 평생의 사명이었다. 그는 “불의를 보고 침묵하는 것은 용기 없는 일”이라고 믿었고, 시시비비를 직설로 가렸다. 유신독재 반대, 북한 주체사상 비판, 3김정치 청산, 자유민주주의 수호, 태평양 시대 구상에 이르기까지, 그는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았고 대중의 논란도 피하지 않았다.
이 책은 김동길의 주요 발언뿐만 아니라 논객 김동길의 삶의 여정을 전체적으로 살펴본다. 그럼으로써 한국 사회에서 논객의 역할이 단순한 해설자가 아니라, 역사의 흐름을 읽고 대중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책임 있는 지식인이어야 함을 일깨운다.
사랑의 힘으로 현대사의 굴곡을 넘은 ‘인간 김동길’
김동길은 인생의 주제는 ‘사랑’이라고 믿었다. 모든 인간이 추구하는 행복의 핵심은 바로 사랑이며, 이를 실천하는 것이 인생을 가치 있게 만든다고 역설했다. 그 사랑은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를 넘어 나라와 민족, 전 인류를 아우르는 것이었다.
어머니와 누이 김옥길(이화여대 총장, 문교부 장관 역임)의 기도와 사랑 속에서 성장한 그는 스승 함석헌에게서 나라와 민족의 의미를 배웠다. 장준하, 법정스님과 함께 독재 정권에 맞서 유신반대 운동을 이끌었고, 감옥에 갇혀서도 청년 죄수들을 가르치고 돌보았다. 그는 독신으로 살았지만, 동시대의 수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며 사랑과 연대의 가치를 널리 나누었다. 대학에서는 2,300명이 수강한 인기 교수였고, 5,000회가 넘는 강연으로 30만 명의 청중을 만났다. 100권이 넘는 저술로 독자와 호흡했으며, 시사랑 모임, 냉면 모임, 장수클럽 등을 통해 가까운 이들과 우정을 이어갔다.
이 책은 잘 알려진 ‘논객 김동길’뿐만 아니라 시를 사랑하고 유머를 즐기며 냉면 한 그릇에 감사할 줄 알았던 따뜻한 ‘인간 김동길’을 함께 비추어, 그의 삶을 입체적으로 보여 준다.
개인의 회고를 넘어 지식인의 공적 삶을 증언하다
이 책은 논객 김동길의 말, 인간 김동길의 삶, 그리고 지식인의 사회적 책임을 함께 기록했다는 점에서 한국형 ‘공적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다.
서구 지식인 자서전은 루소의 《고백록》처럼 ‘개인의 내면 고백’에서 출발해, 토크빌과 존 스튜어트 밀의 ‘사회적 성찰’을 거쳐 사르트르와 에드워드 사이드로 이어지는 ‘참여하는 지성’의 기록으로 발전해 왔다. 한국에서도 함석헌과 장준하 등은 자신의 삶을 통해 시대의 질문에 응답해 왔다. 이 책은 이러한 전통 위에서, 개인적 고백이나 자아 탐구에 머물지 않고, 한국 현대사의 굴곡 속에서 한 지식인이 어떤 기준으로 사유하고 말하고 행동했는지를 기록한 ‘공적 자서전’의 성격을 띤다. 즉, 지식인의 삶을 사적 기억보다 사회적 책임을 중심으로 기록하며, 국내외 지식인의 공적 자서전 전통을 잇고 있다.
당대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지식인의 사회적 역할을 충실히 이행한 김동길의 회고록은 한국 현대사에서 지식인이 차지해온 위치와 역할을 성찰하게 하는 소중한 자료로 남을 것이다.
◉ 책 속으로
에이브러햄 링컨은 어린 김동길에게 영웅으로 박혔다. 그럴 만했음은 적빈 가정의 통나무집에서 자란 불우에도 불구하고 미합중국 대통령에 뽑혔던 극적 일대가 감동이었다. 학년이 올라가 마침내 만난 링컨의 명연설은 어린 시절의 동경과 연민에 더해 믿음을 깊이 심어 주었다.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국가는 불멸이다.”(제2장 뜻을 링컨에 두고, 35~36쪽)
감옥에 갈 각오는 이미 되어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 모든 절차가 조금도 두렵지 않았고 거북하지도 않았다. 감방 벽을 살펴보니, 먼저 그곳에 머물렀던 ‘죄수’가 〈샘터〉라는 잡지에서 뜯어낸 종이 한 장이 붙어 있었다. 그것을 유심히 들여다보니, 도산 안창호의 말이었다. “진리는 반드시 따르는 자가 있고, 정의는 반드시 이루는 날이 있다.”(제3장 지성이 희구한 자유 가치, 46쪽)
평양 시내의 그 많은 냉면집에서 일하던 이른바 ‘중머리’들이 적위대 대원으로 뽑혔다는 소문이 자자하였다. 김일성이 가장 믿고 의지하던 일꾼들은 그런 작자들이었다고 보면 된다. 우리 집은 가난하긴 했으나 학력은 높은 집안이었고 교회에 다니는 기독교 신자들이었기 때문에 김일성과 함께 고향땅에서 살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제4장 나는 누구인가? 여기서 털어놓는다, 85쪽)
서울에 갔다가 버스 타고 와, 문경새재 제3관문 옆 ‘작은 새재’에서 내려 걸어오는 날이면, 툇마루에 앉아 나를 기다리던 누님의 모습이 오늘도 생생하다. 둘이 함께 바라보던 형언키 어려운 석양의 아름다움, 누님을 모시고 3관문까지 걸어 올라가 바위에 걸터앉았을 때, 주머니에서 사탕 한 개를 꺼내 주던 누님의 그 미소를 나는 죽는 날까지 잊을 수 없을 것이다.(제5장 그 어머님에 그 누님, 119쪽)
아주 아득한 옛날에, 내가 가르치던 대학의 영문과에 들어온 여학생 한 사람을 사랑하였다. 사랑 때문에 학교를 사직한다는 것은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그 학생은 졸업하고 멀리, 아주 멀리 떠났다. 나는 정년이 되어 퇴직할 때까지 그 교단을 지키며 살아왔다. 살고 또 살고 그리고도 또 살다 보니 이제 90을 바라보는 노인이 되었다.(제6장 독신 김동길, 124쪽)
50대 함석헌은 더욱 날카롭고 예언자적이었다. 그는 거침없이 한국의 젊은 지성들에게 민족의 갈 길을 제시했다. 18년이나 이어진 박정희 군사정권이 유신헌법과 유신체제를 선포했을 때 ‘유신반대’를 부르짖으며 교문을 박차고 나와 1979년 10.26 사태를 불가피하게 만든 대학생들은 대부분 함석헌의 투지에 감동한 젊은 지성이었다. (제7장 스승과 우정의 그늘, 145~146쪽)
역사 주제는 한 마디로 ‘자유’다. 그래서 나는 후배들에게 “역사의 주제는 자유”라고 가르쳤다. 그것이 내가 파악하고 터득한 진리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역사의 일부라고 할 수 있는 각자 인생의 주제는 무엇인가? 그건 ‘사랑’이다. (제8장 역사와 역사학, 152~153쪽)
“역사는 위인의 전기.” 조국의 역사를 나는 그런 눈으로 바라본다. 그래서 나는 정몽주 앞에 고개를 숙이고, 세종대왕 앞에 무릎을 꿇는다. 역사를 움직인 위인들을 만나서, 그들의 얼굴을 보고, 그들의 말씀을 듣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은 없을 것이다.(제9장 역사는 위인들 전기, 180쪽)
역사가의 일차적 임무는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사실대로 알아내는 것. 그러나 국가권력이 정치적 목적 때문에 과거사를 파헤치고, 그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 집권 세력의 구미에 맞게 풀이한다면, 이는 절대 용납해선 안 될 일이다.(제10장 현대사 백년의 실사구시 인물론, 227쪽)
“나의 때는 이미 지났다.” 이 한 마디는 미국 하버드대 퓨지가 총장 임기를 상당 기간 남겨 놓고 이사회에 사표를 던지면서 남긴 말이었다. 그 일이 하도 감동스러워서 대통령을 꿈꾸던 3김에게 제발 대통령 될 꿈을 포기하고 정계를 은퇴해 달라고 당부했던 것이다. 그 글 때문에 “돌에 맞고 칼에 찔린” 것은 사실이지만, 내가 받은 격려의 편지와 분노의 편지의 비율은 98 대 2였다. 그때도 국민은 내 뜻에 찬동하고 있었다.(제11장 시평은 ‘현대사 적기’, 254~255쪽)
내 신앙은 자존심이다. 민청학련 사건 때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 받았다. 중형인데도 항소를 포기했다. 자존심의 발로였고, 이건 신앙의 힘이었다. 인격은 신앙에서 나온다. 신앙은 제도를 타고 전달된다는 점에서 종교가 등장한다.(제12장 공부 조직의 달인, 289쪽)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 이 한마디가 내가 나의 제자들에게 전하는 가장 값진 선물이라 하겠다. 사람은 한 번 죽으면 된다. 비겁한 인간은 한평생을 살면서 여러 번 죽는다. 죽음의 공포에 떨면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용감한 사람은 한 번만 죽으면 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자기가 옳다고 믿는 일에 목숨을 건다. (제13장 무대 위에서 살아온 인생, 304쪽)
우리 집은 조상 때부터 냉면과 지짐(빈대떡)만으로 50년 동안 손님을 대접해 왔다. 미국 대사를 모셔도, 중앙청 수위들을 청해도, 메뉴는 한결같다. 냉면과 지짐뿐이다. 2015년 10월 2일 생일도 예와 같이 냉면 잔치가 펼쳐졌다. 김동길 답사는 워즈워스의 시 〈무지개〉를 인용했다. “그는 어린 시절 무지개를 볼 때마다 가슴 두근거렸는데, 나이 들어서도 그렇지 못하다면 살고 싶지 않다고 썼는데, 나 역시 그런 마음으로 살아왔다”고 했다. (제15장 김동길 사람 스타일, 371~372쪽)
나는 4년의 임기가 끝난 뒤 아무런 미련도 없이 정계를 떠났다. 그리고 글 쓰는 일, 강연하는 일을 다시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90이 된 오늘 나의 생일을 맞아 나의 삶에 가장 한심했던 4년을 돌이켜 본다. 정치는 나와 인연이 멀고 팔자에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나는 정치를 멀리서 바라보면서 노년을 맞이한 것이다. (제16장 난세를 살아온 역정, 423쪽)
이제는 내가 늙어서 하려 해도 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다. 아흔 노인이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일은 꼭 한 가지만 남았다. ‘남을 사랑할 수 있는 일’, 그 한 가지가 남았다. 가까운 사람들을 예전보다 더 사랑할 수 있다. 처음 만나는 이들도 더 사랑할 수 있다.(제18장 노년의 건강, 441쪽)
나는 매장도 싫고 화장도 싫다. 내가 죽거든 내 몸은 나를 키워 준 연세대 의대 세브란스의료원에 기증하기로 결심한 지 오래다. 그리고 나는 장례식이니 추모예배니 하는 것을 일체 거부한다. 하늘나라 아닌 다른 곳에서 나를 만나려 하지 말라.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생명의 영원함’을 믿고 살았기 때문에 죽음 앞에서도, 죽은 뒤에도 매우 자유롭고 명랑한 영적 존재가 될 것이다.(제20장 생로병사가 꿈같으니, 456~4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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