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간사 7
서문 11
1부 희망의 길
1. 인촌의 조부 김요협, 고창에 오다 25
만석꾼 정계량 사위가 된 장성 젊은이 29
인촌, 세 살 때 큰아버지의 양자로 들어가 34
양부는 육영사업, 생부는 이재 성공 37
고창읍성 공원에 김성수, 백관수 동상 39
인촌을 복권시키려는 후대들의 모임 43
2. 장인 고정주의 개화론은 인촌 사상의 뿌리 45
열세살 신랑과 다섯 연상의 신부 49
의병장 고경명 장군의 후손들 54
창흥의숙 이은 창평초교에 고정주 역사관 57
3. 망국의 길에서, 내소사의 세 청년 63
줄포항 통한 미곡 수출량 매년 5만 석 66
인촌가, 줄포에서 쌀 무역으로 대지주가 되다 73
관직 이용해 수탈에서 면제된 대지주 75
‘인촌 아내’, ‘장손 며느리’ 고광석의 희생적 삶 77
2부 성장의 길
4. 개항지 군산서 신학문 배우고 도쿄 유학길 오르다 81
제사 문제로 선교사 학교 못 들어가 82
나라의 주인은 임금이 아니고 백성 85
홍명희, 일본 유학길을 안내하다 90
5. 도쿄 유학 6년(1908~1914) 97
일본 관비 유학생의 근대화 공헌 98
호남의 지주 유학생이 실패한 관(官)을 대체 100
홍명희가 안내한 인촌과 고하의 일본 유학길 102
인촌, 송진우와 장덕수에 유학비 지원 104
도쿄 유학생들의 네트워킹 105
두 부친을 도쿄로 초청한 인촌 107
3부 역사의 길
6. 단식투쟁으로 인수한 중앙학교 115
단식투쟁으로 생부 설득한 인촌 119
화동에서 계동 1번지로 중앙학교 이전 122
퇴교생들의 보금자리 중앙학교 124
남이 안 하는 것을 해보라 125
인간에 대한 관찰과 배려 126
민족의식이 담긴 무궁화와 인절미 128
조선말을 안 놓은 수업 129
7. 중앙고보와 북촌에서 일어난 3·1 운동 131
중앙학교 숙직실 찾아온 도쿄 유학생 밀사 134
한용운이 선언문을 썼더라면 138
인촌 중앙학교 살리기 위해 줄포행 144
근대사의 표지석 줄지어 늘어선 북촌 147
북촌의 세대교체, 인촌과 천도교인·기독교인들의 이주 149
8. 간디의 물레에서 배운 경성방직 151
경성직뉴 ‘우리의 광목’ 최초로 생산 153
면포 자급은 조선경제 독립을 위한 급선무 155
민족정신 ‘태극성’ 상표 빅 히트 158
태극마크를 영어 ‘S’자로 둘러대 상표 심사 통과 162
여성도 공부해야 나라가 발전한다 165
대한민국 상장기업 1호 경방의 변신 167
9. 조선민중 대변하는 한글 신문의 탄생 171
창간사 “일제 통치 10년은 악몽이었다” 174
조선 최초의 순직기자 177
총독부 꼬붕 깡패 박춘금의 행패 178
조선총독부 청사와 마주보는 동아 신사옥 180
중앙고보생들의 6·10 만세운동 181
조선어학회에서 제정한 한글맞춤법을 앞장서 쓰다 183
정부 없는 시대의 충무공 유적보존 운동 186
4부 가슴 뛰는 길
10. 3·1 만세 동참한 ‘옥중의 꽃’ 이아주 191
공판 방청하다 감복해 필생의 반려자로 생각 197
11. 민립 보성전문과 고려대학교 203
세계 최고수준 대학들을 시찰하다 204
하와이에서 만난 독립운동가 이승만 207
최초의 민간 고등교육기관 보성전문 208
웅장한 석조건물은 ‘겨레에 대한 격려’ 211
본관 기둥에 새긴 무궁화 한 쌍 213
학교 간판 들고 송현동에서 안암동까지 행진 215
국보 보물 등 20여 점 갖춘 고려대 박물관 218
평양박물관에 간 인촌의 고미술품 220
손기정, 보전 입학 후 한 학기 다니고 중단 221
척식학교로 전락한 보전의 마지막 모습 223
12. 손기정 가슴에서 일장기 지우다 227
강제폐간 가는 마지막 게릴라전 231
13. 독립운동하다 감옥 간 아들과 며느리, 딸 결혼식 안 간 인촌 237
일가족 세 명이 독립운동으로 감옥 가다 237
“나는 친일파요”, 국민 애송 시인의 자조 243
친일파의 아들과 연애 결혼한 딸 245
5부 공선사후의 길
14. 반민특위와 친일진상규명위의 다른 판단 251
장홍염 독립운동 자금 지원 252
반민족행위 분류 기준 254
이승만 행정부와 국회 반민특위의 반목 255
친일반민족행위자 결정 및 서훈 취소 256
엔도 정무총감 “인촌, 귀족원 작위 거부했다” 257
도산 안창호의 비서 구익균 등의 증언 261
인촌의 ‘매일신보 기고’ 경위 263
김대중 전 대통령의 특별 기고 266
카터 J. 에커트가 밝힌 창씨개명의 진실 268
주대환의 로동신문과 매일신보 비교 270
역사학자 임종국, 카터 에커트, 이승렬 등의 견해 272
서재필 박사, ‘진짜 애국자’ 인촌 274
김형석, “동시대인의 평가 중요” 275
굴욕을 견디며 지키려고 한 것은 학교였다 275
15. 공산화 막고 경제발전 이룬 농지개혁 277
김일성을 영웅으로 만든 북한의 토지개혁 278
‘농지는 농민에게로’, 공산당의 기만 282
헌법학자 기근 속 유진오 헌법초안 작성 284
남한 최대 지주가 공선사후로 농지개혁 밀었다 287
인촌, 한민당 지주들 설득 293
성공한 농지개혁이 경제발전 가져왔다 295
농지개혁으로 교육인구 늘어 산업인력 제공 298
16. 한민당을 이끌고 301
고하, 총독부의 치안권 이양 제의 거절 302
‘서울에 미군 진주한다’, 미 공군기 전단 낙하 309
한민당 결성, 송진우 수석총무 맡아 310
한민당, 이승만 집 마련해주고, 임정에 9백만 원 전달 311
고하 암살로 인촌 정치 나서 314
이승만 정읍 발언 “남조선 단정 수립해야” 317
인촌, 조선민주당 이윤영에게 선거구 양보 319
이승만 “이름만 대통령 할 생각 없다” 320
북의 남침, 전쟁 발발 323
트루먼, 확전 주장하는 맥아더 해임 325
부통령 사임이유서 330
자유당 일당 천하 333
6부 이별의 길
17. 범야 통합과 의회주의 전통 세우다 341
야당 통합 촉발한 사사오입 개헌 343
인촌 ‘조봉암 신당 가입’ 밀다 348
부르주아 없이 민주주의 없다 350
18. 애도의 물결 국민장 353
이승만 조사 “큰 교육자에 애국지사” 358
인촌 김성수 연보 361
참고 문헌 364
저자 소개 3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