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촌탐사

이진강, 황호택 지음

판매가(적립금) 24,000 (1,200원)
분류 인문교양
판형 신국판(152×225mm)
면수 372
발행일 2025-01-25
ISBN 978-89-300-4194-2
수량
총 도서 금액     24,000

인촌 김성수가 남긴 삶의 궤적을 따라가다.

《인촌탐사: 밝은 길을 찾아가다》는 탐사의 형식을 빌려 인촌 김성수의 흔적을 쫓아 그의 삶을 복원한 책이다. 인촌이 태어난 고창의 생가, 도쿄 유학 시절을 보낸 하숙집을 거쳐 그의 묘소에 이르기까지 인촌의 발자취가 남은 곳이라면 어디든 직접 찾았다. 저자들은 일생 동안 이룬 공적에 비해 세상에 덜 알려진 데다 일부 사실은 잘못 알려진 인촌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고 적절한 이해를 돕기 위해 이 책을 집필했다.

일제 강점기에 인촌은 민족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교육에 힘쓰고, 민족자본을 세우려고 애쓰고, 조선 민중을 위한 언론을 창간했다. 해방 후에는 민주주의를 지키려고 노력했다. 일제하에서도 어렵게 설립한 보성전문(현 고려대)과 지주인 그가 선공후사로 나선 덕에 이룰 수 있었던 농지 개혁은 인적자본 형성과 경제발전의 밑거름이 되었다. 저자들은 인촌의 시간과 공간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았던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인촌의 삶을 차근차근 탐사하고, 전 생애에 걸쳐 그가 이룬 다양한 성취와 진면목을 입체적으로 드러냈다.

 

 

 

 

 

 

◉ 책 소개글

 

 

 

법조계, 언론계 원로가 직접 읽고 듣고 본 인촌 김성수의 생애사

《인촌탐사: 밝은 길을 찾아가다》의 저자들은 평생 법조인과 언론인으로 일하며 쌓은 내공과 경륜을 살려 집필했다. 인촌의 흔적이 남은 장소를 찾아 직접 촬영한 사진자료를 풍성하게 담아 독자가 직접 함께 탐사에 동행한 것처럼 느끼게끔 한다.

인촌은 호남 최고의 만석꾼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홀로 편안히 사는 삶을 추구하는 대신 나라를 위해 애썼다. 일제 강점기에 중앙학교, 보성전문 등 학교를 운영해 교육으로 민족의 역량을 키우고자 했다. 또 민족자본으로 경성방직을 운영하여 사업으로 나라를 일으키려 했고, 동아일보를 창간해 조선 민중의 목소리를 대변하고자 했다. 해방 후 혼란을 중재하고, 대지주임에도 농지개혁에 적극 나섰고, 자유당 독재에 제동을 건 정치인이기도 했다.

저자들은 인촌 김성수를 조명한 서적과 논문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인촌의 생애사에 대해 증언할 수 있는 인물들을 인터뷰함으로써 독자들이 인촌의 진면목을 직접 보고 나름의 판단을 세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덕분에 교육, 사업,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인촌이 이룬 큰 성취들이 입체적으로 그려졌다. 또한 그와 함께 격동의 시대를 살았던 우리 근현대사 속 큰 인물들의 삶도 생생하게 펼쳐져 거대한 대하드라마를 이룬다.

 

 

 

 

인촌 개인을 넘어 시대에 대한 물음으로 확장될 탐사의 여정

구한말에서 일제 강점기, 해방공간을 지나 제1 공화국까지를 살아 낸 인촌의 삶은 격동의 시대를 관통했다. 탐사의 형식을 빌려 그의 흔적을 더듬어 쫓는 ‘인촌탐사’는 여섯 줄기의 길로 막힘없이 진행된다. 원로 법조인 이진강 인촌기념회 이사장과, 원로 언론인 황호택 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가 원숙한 솜씨로 이야기를 엮은 덕이다.

우선 1부와 2부는 인촌의 탄생과 성장을 다룬다. 1부에서는 인촌의 내력과 그의 집안이 고향에 자리 잡은 배경과 그의 초년기를 그린다. 2부에서는 본격적으로 신학문을 배우고 큰 뜻을 품은 채 유학길을 떠나는 과정을 따라간다.

이어 3부와 4부에서는 일제 강점기를 중심으로 인촌이 남긴 흔적을 재구성한다. 3부에서는 일제 강점기라는 역사적 상황 속에서 인촌이 민족을 위해 했던 일들을 중앙학교 운영, 3·1운동, 경성방직 운영, 동아일보 발행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4부에서는 훗날의 고려대인 보성전문을 설립하는 과정에서 인촌이 쏟은 각고의 노력을 상세히 풀어 썼다. 동아일보가 폐간되기까지 겪었던 여러 곡절과 함께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겪은 가족사를 엮어 인촌 개인의 삶 또한 같이 그린다.

5부에서는 인촌의 친일 문제에 대하여 복잡한 맥락과 여러 자료를 제시하면서 동시에 동시대인의 평가가 중요함을 강조한다. 또한 인촌의 적극적 지지로 무사히 진행될 수 있었던 농지개혁의 의의를 재조명하고 한민당을 이끈 정치인 김성수를 조명한다. 6부에서는 독재를 막기 위해 통합을 적극 추진하고 조봉암까지 아우른 정치인 인촌의 행적을 부각한다.

 

 

 

 

 

◉ 추천의 글

 

 

 

김성수는 문화민족주의를 지향한 한국 근대화의 선구자다. 한민족이 처한 역사적 배경과 사회적 상황을 숙고하고 민족의 역량을 기르기 위한 방법으로 인재양성, 산업기반 조성, 계몽 운동을 확대해 나갔다. … 이 책이 한국 근대사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안몽필(일본 다이토분카대학 명예교수)

 

 

이 책은 인촌의 생애사 연구를 통해 한국근현대사를 이해하는데 새로운 지평을 연 책이다. … 읽기 편하고 이해하기 쉽게 쓰여 있어, 책을 읽다 보면 인촌과 함께 숨 쉬고 있는 것 같은 생동감을 준다. 인촌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소개서가 될 것이고,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그와 재회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김중순(미국 테네시대학 명예교수)

 

 

시대의 빛과 어둠, 시각과 해석의 차이를 통과하며 책은 ‘탐사’의 형식을 취한다. 그 발걸음을 주시하는 사람은 자연히 그만의 판단을 만들어 갈 것이다. 그것이 살아 있는 역사가 지니는 힘이므로. 탐사의 여정이 인촌 개인을 넘어 시대에 대한 물음으로 확장될 수 있는 이유다.

김금희(소설가)

발간사 7

서문 11

 

1부 희망의 길

1. 인촌의 조부 김요협, 고창에 오다 25

만석꾼 정계량 사위가 된 장성 젊은이 29

인촌, 세 살 때 큰아버지의 양자로 들어가 34

양부는 육영사업, 생부는 이재 성공 37

고창읍성 공원에 김성수, 백관수 동상 39

인촌을 복권시키려는 후대들의 모임 43

 

 

2. 장인 고정주의 개화론은 인촌 사상의 뿌리 45

열세살 신랑과 다섯 연상의 신부 49

의병장 고경명 장군의 후손들 54

창흥의숙 이은 창평초교에 고정주 역사관 57

 

 

3. 망국의 길에서, 내소사의 세 청년 63

줄포항 통한 미곡 수출량 매년 5만 석 66

인촌가, 줄포에서 쌀 무역으로 대지주가 되다 73

관직 이용해 수탈에서 면제된 대지주 75

‘인촌 아내’, ‘장손 며느리’ 고광석의 희생적 삶 77

 

2부 성장의 길

 

4. 개항지 군산서 신학문 배우고 도쿄 유학길 오르다 81

제사 문제로 선교사 학교 못 들어가 82

나라의 주인은 임금이 아니고 백성 85

홍명희, 일본 유학길을 안내하다 90

 

 

5. 도쿄 유학 6년(1908~1914) 97

일본 관비 유학생의 근대화 공헌 98

호남의 지주 유학생이 실패한 관(官)을 대체 100

홍명희가 안내한 인촌과 고하의 일본 유학길 102

인촌, 송진우와 장덕수에 유학비 지원 104

도쿄 유학생들의 네트워킹 105

두 부친을 도쿄로 초청한 인촌 107

 

3부 역사의 길

 

6. 단식투쟁으로 인수한 중앙학교 115

단식투쟁으로 생부 설득한 인촌 119

화동에서 계동 1번지로 중앙학교 이전 122

퇴교생들의 보금자리 중앙학교 124

남이 안 하는 것을 해보라 125

인간에 대한 관찰과 배려 126

민족의식이 담긴 무궁화와 인절미 128

조선말을 안 놓은 수업 129

 

 

7. 중앙고보와 북촌에서 일어난 3·1 운동 131

중앙학교 숙직실 찾아온 도쿄 유학생 밀사 134

한용운이 선언문을 썼더라면 138

인촌 중앙학교 살리기 위해 줄포행 144

근대사의 표지석 줄지어 늘어선 북촌 147

북촌의 세대교체, 인촌과 천도교인·기독교인들의 이주 149

 

 

8. 간디의 물레에서 배운 경성방직 151

경성직뉴 ‘우리의 광목’ 최초로 생산 153

면포 자급은 조선경제 독립을 위한 급선무 155

민족정신 ‘태극성’ 상표 빅 히트 158

태극마크를 영어 ‘S’자로 둘러대 상표 심사 통과 162

여성도 공부해야 나라가 발전한다 165

대한민국 상장기업 1호 경방의 변신 167

 

 

9. 조선민중 대변하는 한글 신문의 탄생 171

창간사 “일제 통치 10년은 악몽이었다” 174

조선 최초의 순직기자 177

총독부 꼬붕 깡패 박춘금의 행패 178

조선총독부 청사와 마주보는 동아 신사옥 180

중앙고보생들의 6·10 만세운동 181

조선어학회에서 제정한 한글맞춤법을 앞장서 쓰다 183

정부 없는 시대의 충무공 유적보존 운동 186

 

4부 가슴 뛰는 길

 

10. 3·1 만세 동참한 ‘옥중의 꽃’ 이아주 191

공판 방청하다 감복해 필생의 반려자로 생각 197

 

 

11. 민립 보성전문과 고려대학교 203

세계 최고수준 대학들을 시찰하다 204

하와이에서 만난 독립운동가 이승만 207

최초의 민간 고등교육기관 보성전문 208

웅장한 석조건물은 ‘겨레에 대한 격려’ 211

본관 기둥에 새긴 무궁화 한 쌍 213

학교 간판 들고 송현동에서 안암동까지 행진 215

국보 보물 등 20여 점 갖춘 고려대 박물관 218

평양박물관에 간 인촌의 고미술품 220

손기정, 보전 입학 후 한 학기 다니고 중단 221

척식학교로 전락한 보전의 마지막 모습 223

 

 

12. 손기정 가슴에서 일장기 지우다 227

강제폐간 가는 마지막 게릴라전 231

 

 

13. 독립운동하다 감옥 간 아들과 며느리, 딸 결혼식 안 간 인촌 237

일가족 세 명이 독립운동으로 감옥 가다 237

“나는 친일파요”, 국민 애송 시인의 자조 243

친일파의 아들과 연애 결혼한 딸 245

 

5부 공선사후의 길

 

14. 반민특위와 친일진상규명위의 다른 판단 251

장홍염 독립운동 자금 지원 252

반민족행위 분류 기준 254

이승만 행정부와 국회 반민특위의 반목 255

친일반민족행위자 결정 및 서훈 취소 256

엔도 정무총감 “인촌, 귀족원 작위 거부했다” 257

도산 안창호의 비서 구익균 등의 증언 261

인촌의 ‘매일신보 기고’ 경위 263

김대중 전 대통령의 특별 기고 266

카터 J. 에커트가 밝힌 창씨개명의 진실 268

주대환의 로동신문과 매일신보 비교 270

역사학자 임종국, 카터 에커트, 이승렬 등의 견해 272

서재필 박사, ‘진짜 애국자’ 인촌 274

김형석, “동시대인의 평가 중요” 275

굴욕을 견디며 지키려고 한 것은 학교였다 275

 

 

15. 공산화 막고 경제발전 이룬 농지개혁 277

김일성을 영웅으로 만든 북한의 토지개혁 278

‘농지는 농민에게로’, 공산당의 기만 282

헌법학자 기근 속 유진오 헌법초안 작성 284

남한 최대 지주가 공선사후로 농지개혁 밀었다 287

인촌, 한민당 지주들 설득 293

성공한 농지개혁이 경제발전 가져왔다 295

농지개혁으로 교육인구 늘어 산업인력 제공 298

 

 

16. 한민당을 이끌고 301

고하, 총독부의 치안권 이양 제의 거절 302

‘서울에 미군 진주한다’, 미 공군기 전단 낙하 309

한민당 결성, 송진우 수석총무 맡아 310

한민당, 이승만 집 마련해주고, 임정에 9백만 원 전달 311

고하 암살로 인촌 정치 나서 314

이승만 정읍 발언 “남조선 단정 수립해야” 317

인촌, 조선민주당 이윤영에게 선거구 양보 319

이승만 “이름만 대통령 할 생각 없다” 320

북의 남침, 전쟁 발발 323

트루먼, 확전 주장하는 맥아더 해임 325

부통령 사임이유서 330

자유당 일당 천하 333

 

6부 이별의 길

 

17. 범야 통합과 의회주의 전통 세우다 341

야당 통합 촉발한 사사오입 개헌 343

인촌 ‘조봉암 신당 가입’ 밀다 348

부르주아 없이 민주주의 없다 350

 

 

18. 애도의 물결 국민장 353

이승만 조사 “큰 교육자에 애국지사” 358

 

 

인촌 김성수 연보 361

참고 문헌 364

저자 소개 368

이진강

고려대 법과대학 재학 중이던 1965년 제5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서울대 사법대학원을 수료했다. 육군 법무관으로 월남 전선에서 복무했다. 1971년 광주지방검찰청 검사를 시작으로 23년 동안 검찰에서 일했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 근무할 때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재수사를 담당했다. 1994년 검찰을 퇴직한 후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서울변호사회 회장,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 대법원 양형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냈다. 저서로 《주택임대차보호법령, 가등기 담보 등에 관한 법률 해설》, 《80년 한결같이: 자서전》을 펴냈다. 홍조근정훈장,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황호택

 

1987년 동아일보 편집국 법조팀장으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6월 항쟁을 취재했다. 이 사건으로 한국기자상을 두 해(1987, 1988년) 연속 수상했다. 월간지 전성시대에 〈신동아〉에 ‘황호택이 만난 사람’이라는 문패를 달고 인물탐구 인터뷰를 7년 동안 연재하고 동아일보에 ‘황호택 칼럼’을 집필했다.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논설주간(전무)을 끝으로 36년간 근무하던 회사를 퇴직했다. 현재는 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겸직교수로 후학과 소통하고 있다. 저서는 《박종철 탐사보도와 6월항쟁》 등 20여 권이 있다. 《왕들의 길, 다산의 꿈, 조선진경 남양주》, 《대나무숲 담양을 거닐다》, 《서해의 에메랄드, 신안 천사섬》 등 탐방기를 시리즈로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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