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일상 속 빛나는 장면을 건져 올리는
우리 시대의 서정시인 김용택의 신작 산문
맑고 투명한 언어로 오랜 사랑을 받아 온 시인 김용택이 5년 만에 신작 에세이를 선보인다. 강물 흐르는 소리, 새 울음소리, 쏟아져 내리는 빗소리, 하얗게 눈 쌓이는 소리… 시인 김용택이 쓴 글은 자연의 소리들로 그득하다. 각각의 계절이 부르는 그 무심한 노래 속에서 시인은 끝내 사랑의 말을 찾는다. 그리하여 “받아 적으니, 시가 되었다”는 한 시인의 지극정성이 책 안에 오롯이 담겨 있다.
◉ 책 소개글
“시인의 일상은 낱낱이 버릴 것이 없다.”
《섬진강》, 《시가 내게로 왔다》, 《콩, 너는 죽었다》 등으로 대한민국 남녀노소의 사랑을 받은 시인 김용택. 어느 날 그는 하루에 한 편씩 짧은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스스로의 삶은 물론 이웃의 삶을 되돌아보며 사람을 향한 깊은 애정을 술회하기 위해. 언제나 가만히 보듬고 다독여 준 자연을 향한 오랜 연정을 토로하기 위해. 그리고 기꺼이 시가 되어 준 이 세상을 향한 고운 순정을 고백하기 위해. 매일 아침마다 산책을 마치고 책상 앞에 앉았다. 김용택이 5년 만에 내놓은 에세이 《아침산책》은 그렇게 완성되었다.
“사랑에는 이유가 없다. 놀라운 말이다.”
김용택 시인은 산과 산 사이로 강물이 흐르는 조그만 동네, 전북 임실 진메마을에서 나고 자라 지금도 그곳에 살고 있다. 이미 시인은 자신의 시적 영감과 인문학적 감수성을 마을의 자연에게서 배웠다고 누차 밝힌 바 있다. 이 책에서도 그는 살구나무에 꽃이 열리고 지난여름의 새가 돌아오고 둥근달이 이지러지고 내리던 빗방울이 눈송이로 어는, 이 모든 자연 현상을 마치 처음 맞닥뜨린 듯 놀라워한다. 나무의 몸짓과 별들의 표정을 살피는 그의 마음씨를 통해 독자 또한 단순한 사실 안에서 자명한 진실 한 가지를 발견하게 된다. 세계의 미세한 변화를 감지하고 그것을 입으로 말하는 일, 그 자체가 바로 ‘사랑’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매일 아침 시인과 함께 “사랑이 변하지 않는 지점”까지 걷는다. 그렇게 강을 건너 숲을 지나 빛과 바람조차 넘어, 다시 돌아온다. 꼭 계절의 흐름같이.
“아까 바라보던 물을 잊는다. 삶은 하염없지 않다.”
강물 흐르는 소리, 새 울음소리, 쏟아져 내리는 빗소리, 하얗게 눈 쌓이는 소리… 이처럼 시인 김용택이 쓴 글은 자연의 소리로 그득하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사람들은 계절이 부르는 무심한 노래를 배경으로 춤을 추듯 살아간다. 콩밭에 앉아 풀을 매고 바위 위에서 젖은 등을 말리고 나무 그늘에 누워 바람 쐬고 한솥밥을 나눠 먹으며 크게 웃는다. 이러한 생활의 아름다움을 시인은 결코 놓치지 않는다. 그의 말처럼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이야말로 “아름다운 한 편의 시이자 그림이고 음악이다.” 살뜰하고 도타운 이들 앞에 다시 한 번 독자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곱씹게 된다. 그리하여 이웃과 인사하는 시인의 곁에 바투 서서 우리는 강을 건너 숲을 지나 기쁨과 슬픔까지 넘어, 다시 돌아온다. 꼭 사람의 마음같이.
“시(詩)는 인간의 고향, 집으로 돌아가는 멀고 먼 여정이다.”
시인은 시를 통해 각각의 계절이 빚어내는 모양 그리고 시절을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들이 손에 쥔 사물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세계를 그려 낸다. 다시 말해 김용택의 시는 온 세상을 다룬다. 그러니까, 온 세상이 그의 시 속이다. 독자는 《아침산책》을 통해 “받아 적으니 시가 되었다”고 말하는 한 시인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아울러 그가 직접 촬영한 사진 10여 장이 수록되어 있어, 순간을 포착하는 시인의 예민한 시선 또한 살펴볼 수 있다. 이 책은 봄에서 시작하여 겨울을 거쳐 다시 봄으로 흐른다. 그 일 년이라는 시간은 몸이 걸어가는 길이 마음으로 이어지는 동안이다. 그리고 책을 읽는 우리가 희고 깨끗한 가슴을 갖게 되는 동안이다. 김용택이 그러모은 사계절 에세이 《아침산책》을 통해, 온 세상과 벗하며 묵묵하게 걸어 온 한 시인과의 산책에 동행해 보자.
◉ 책 속에서
올해는 하루에 한 편씩 글을 쓰기로 한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세상을 대하는 이 온기를 마음에 담고 새어 나가지 않게 오래오래 보관해 놓는다. (4쪽)
다시는 생명이 올 수 없는 것들에도 늘 봄이 묻어 있습니다. (19쪽)
어제와는 다른 저 바람은 무엇을 보고 왔기에 어제와는 다른 바람인가. (20쪽)
사랑한다. 암, 너를 사랑하고말고. 걷는 내내 내가 너에게 한 말이다. 내가 세상의 깊은 곳에 한 말이다. 사랑에는 이유가 없다. 놀라운 말이다. (24쪽)
사진은 늘 지금이다. 이다음이 없다. 사물들은 때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그 어떤 순간도 빛도 어둠도 다음이 없다. 지금이다. (29쪽)
살구나무를 심으려고 구덩이를 다 판 후 나는 나무를 들고 이런 생각을 하였지요. ‘정식으로 살고 싶다.’ 나는 나무를 정식으로 심었습니다. (72쪽)
내가 쉬어야, 달이 쉰다. 바람이 쉰다. 이제 어제와는 다른 말을 하게 될 것이다. (89쪽)
나의 아침산책은 고요하다. 내가 길을 내며 가는 것 같다. 걸어온 내 길을 지워 주는 고요 속을 내가 간다. 고요 속에 하지 감자꽃이 피어 있다. 희다. (90쪽)
해 지고 노을이 살아 있는 하늘 아래를 걸었다. 벼들이 파란 들길이다. 제법 다정하였다. 손길이 스치면 잡기도 하였다. (126쪽)
삶은 주름 같은 것이랍니다. 다치면 아물고 아문 곳이 또 아프고 덧나다가 그러면서 아물지요. 아문 흉터들은 나 몰라라 빤질빤질 빛나고요. (154쪽)
그곳에 옛사람들이 해맑은 얼굴로/ 흰옷을 입고 낙엽 위에 앉아 쉰다./ 낙엽 밟는 소리가 스스럼없이 이승까지 건너온다. (2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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