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지어 뜨끈한 밥과 제철 먹거리로 만든 반찬, 정성 어린 밥상으로 사람과 마음을 나누는 김외련의 음식 철학이 고스란히 담긴 책이다. 사시사철 내내 먹을 수 있는 음식과 철 따라 만들어 먹는 음식이 순서대로 수록되었다. 저자가 손수 그린 먹음직스러운 음식 수채화를 곁들였다. 약식동원(藥食同源)을 통감한 이가 평생을 그러모은 한식 조리법을 모두 전수한다.
◉ 책 소개글
먹고살기 어려운 시대, 밥상의 ‘품격’이란?
‘먹고살다’라는 말이 있다. ‘먹다’와 ‘살다’ 두 동사를 합쳐 “생계를 유지하다” 정도의 뜻으로 쓰이지만, 인간의 삶이란 곧 먹는 일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임을 알 수 있는 말이다. 먹고살기 어려운 시절이라고들 한다. 이는 물론 살림살이의 곤경을 가리키겠으나,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의 식생활과 연결 지어 해석해도 딱히 그릇되지는 않겠다. 나트륨·당류의 과다 섭취, 보존 기간을 늘리기 위해 첨가되는 화학물질, 즉 높은 열량에 비해 낮은 영양가의 음식들이 넘쳐 나는 요즈음의 밥상. 음식이 우리의 건강한 삶을 위협하고 있다. 정말 먹고 살기 어려운 때다.
한편 ‘먹여 살리다’는 말도 있다. “생계를 유지하도록 돌보아 주다”의 뜻으로 쓰이는 관용구지만, 마찬가지로 먹는 일과 연결 짓는다면 우리에게 이 말은 쉬이 부엌에서 달그락대며 바삐 음식을 만드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이른 아침 부지런히 일어나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쌀밥을 짓는 사람. 제철 식재(食材)를 무치고 볶아 찬을 내는 사람. 그렇게 우리를 먹여 살리는 넉넉한 밥상을 차리는 사람. 그런 사람이 바로 이 책 《밥상의 품격》의 저자 김외련이다.
“배를 가른 통대구가 줄줄이 널려 겨울바람에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고 대나무 채반에는 무와 배추 시래기가 마르고 있으며 한쪽에는 한약방에서나 볼 작두가 대구 마르기를 기다리며 누워 있는 정경”(331쪽) 속 김외련은 오랜 세월, ‘나와 내 가족 그리고 이웃을 위한 밥’을 손수 지어 왔다. 무르고 약한 자식들을 먹여 살린 건강 밥상부터 죽음의 문턱에서 스스로를 먹여 살린 영양 밥상까지. 음식을 경유한 저자의 인생사가 담긴 이 책은 그리하여 묵은 장맛같이 구수하면서 향긋하다.
먹여 살리는 마음, 밥상의 ‘진심’이란?
《밥상의 품격》에는 저자의 요리 철학이라 할 수 있는 ‘제철 싱싱한 재료, 최소한의 양념, 최고 간단의 조리법’이 담긴 음식 레시피 256종이 수록되어 있다. 책의 독자는 마치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려진 밥상 앞에 앉은 듯하다. 잘 살펴보면 사시사철 먹을 수 있는 음식과 봄·여름·가을·겨울, 철 따라 만들어 먹는 음식들이 순서대로 담겼다. 아울러 저자가 정성껏 그린 음식 수채화도 곁들였으니 보기도 먹기도 좋은 한 상이라 할 수 있겠다.
이 넉넉한 밥상을 차려 낸 김외련은 ‘제 손으로 만들어 먹는 음식’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섭생의 의미도 있지만,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서 생활을 사랑하고 현실을 의식하는 심성이 인격에 베어들기 때문”(330쪽)이다. 또한 저자는 음식이란 함께 나눌 때 진정한 가치가 생겨난다고 믿는다. ‘가을 아욱국은 문 닫고 먹는다’는 심보 고약한 태도보다는, ‘맛있는 음식은 3할은 덜어 남에게 맛보도록 양보하라’는 《채근담》 속 살뜰한 마음씨를 행동으로 옮겨야 하는 것이다.
정성이 듬뿍 담긴 이 256개 레시피는 그리하여 나눔을 실천했던 이의 삶이 고스란히 담긴 자서전과도 같다. 김외련의 조리법을 따라 만든 음식 하나하나는 먹고살기 어려운 이 시절, 우리의 끝 모를 허기를 비로소 채워 줄 것이다. 진심이란 언제나 우리를 먹여 살리니 말이다.
◉ 책 속에서
내가 요리의 본질을 깨닫고, 그야말로 요리를 즐기게 된 동기부여는 유방암이다. 끔찍한 재앙과도 같은 그 병은 시련과 고통만큼이나 내게 많은 귀한 것들을 안겨주었다. 요리가 그중의 하나다.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필수적인 한 요
건인 식생활에 대한 소양을 갖추게 됐음은 실로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나쁜 일 가운데는 반드시 좋은 일도 있기 마련’이라는 인생의 한 비밀을 경험한다. (322쪽)
‘가르치는 사람이 더 배운다.’는 상식대로였다. 매번 두세 가지 협업으로 단시간에 요리해 내는 음식을 스스로들 찬탄했다. 내 요리에 대한 소신을 그대로 실습하고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음식 그 자체만이 아니다. 손수 만든 음식을 다른 사람들과 같이 즐김은 친밀해지는 과정의 촉매가 되는 동시에 그 속도에 가속을 더해준다는 사실도 마찬가지다. (329쪽)
제 손으로 만들어 먹는 음식이 왜 중요한가? 섭생의 의미도 있지만,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서 생활을 사랑하고 현실을 의식하는 심성이 인격에 배어든다는 나의 소신도 암묵적으로 그들과 나누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330쪽)
김 여사가 해주는 음식은 내가 어릴 적 방학 때마다 시골 할머니 집에 가면 먹었던 순수한 우리 음식의 맛을 떠올리게 한다. 시골집 마당 빨랫줄에 배를 따서 줄줄이 널어놓았던 복어를 무 빚어 넣고 된장만으로 잘박하게 졸인 복어찌개에다 바닷가에서 걷어온 모자반을 톡 쏘는 동치미 무채와 멸치젓국에 무쳐놓은 것이 전부인 그 밥상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한다. (332쪽)
‘맛있는 음식은 3할을 덜어서 남에게 맛보도록 양보하라’는 홍자성의 「채근담」 경구를 실천하고 있다. ‘남에게 맛보도록 양보’하는 것이 아니라, ‘맛있는 음식을 장만하였으니 같이 즐기자’는 취지의 초청인 것이다. (3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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