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햇살처럼, 고요한 봄비처럼
마음을 적시는 다정다감한 침묵의 말들
‘이슬비 총리’가 다정한 눈길로 들여다본 세상 풍경 이야기. 2022년 3월부터 2023년 12월까지 약 2년에 걸쳐 〈조선일보〉 주말판에 연재되었던 김황식 전 국무총리의 칼럼을 묶은 《풍경이 있는 세상》이 출간되었다. 여러 가지 풍경으로 가득한 세상을 돌아보며 “가볍지만 유익한”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던 그가 다시 매만지고 다듬은 84편의 글을 들고 독자들을 찾아왔다.
그는 전쟁으로 고통 받는 다른 나라의 이웃을 위해 마음 아파하다가도 때로는 동네 아이들을 불러 정답게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미술관에 들러 동시대를 위트 있게 표현한 작품에 감탄하기도 한다. 세상의 모든 풍경을 살뜰히 돌아보며 느낀 소회가 낮지만 다정다감한 목소리를 따라 전해진다. 그의 글에는 사회적 갈등을 바라보는 균형 잡힌 시각이 있고, 우는 자들과 함께 눈물 흘릴 줄 아는 따뜻한 가슴이 있고, 공동체의 미래를 고민하는 묵직한 책임감이 있다. 그가 그린 풍경 스케치를 한 장씩 넘기다 보면, 조심스레 눌러 쓴 ‘침묵의 언어’가 어느새 마음을 조용히 적실 것이다.
▎책 소개글
세상의 모든 풍경에서 건져 올린 따스한 이야기
김황식 전 국무총리의 첫 번째 칼럼집. “아름답고 따스한 풍경 이야기로 세상을 여유롭고 풍성하게 만드는 데에 뜻을 둔” 84편의 칼럼을 한데 묶었다. 남다른 감수성이 배인 글은 저자의 바람대로 “편하게 읽히면서도 무언가 따뜻한 느낌이 남는”다. 독자의 눈높이에 맞추어 단어 하나하나를 조심스럽게 골라 쓴 덕분이다.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부터 정치적 갈등을 둘러싼 잡음, 더불어 사는 공동체에 대한 희망, 세계의 주목을 받은 한국의 젊은 학자들, 이웃들과 나누기 좋은 아름다운 시와 그림까지, 그의 관심이 미치지 않는 이야깃거리란 없다. 말 그대로 ‘세상의 모든 풍경’에서 보고 듣고 느낀 바를 구어체와 경어체로 담박하고 편안하게 전한다.
타자를 위한 연민과 감사가 묻어나는 위로의 글
김황식 전 총리의 별명은 ‘이슬비 총리’, ‘울보 총리’다. 총리라는 자리의 무거움을 생각해 보면 언뜻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이 이름은 사실 “조용히 내리는 이슬비가 열매를 맺게 하듯” 조용히 내실을 다지고 싶은 마음의 발로다. 그가 쓰는 글도 이런 마음 씀씀이를 닮았다. “타자에 대한 연민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는 것을 잘 이해하는 인물답게 그의 글에는 훈계가 아닌 걱정과 위로가 묻어난다. 연금개혁을 둘러싼 잡음을 두고서도 한쪽을 쉽게 비난하기보다 이를 “세대 간 사랑잇기 작업”으로 생각해 보자며 신중하게 권유한다. 법조인의 자세를 말할 때에는 법관으로 일하던 시절 소년수에게 주머니에 든 껌을 나눠주며 위로했던 이야기를 꺼내며 법을 집행하는 이들에게 부디 측은지심을 잃지 말라고 부탁한다.
한편 그는 세상이 미처 잊고 있던 이들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내며 그들에게 깊이 머리를 조아리는 일도 잊지 않는다. 일제강점기 당시 뤼순 감옥에서 안중근 의사에게 감회받고 평생 그를 흠모하며 기린 일본인 관리, 목포에 고아를 위한 쉼터 ‘공생원’을 세워 3천 명의 아이들을 보살폈던 윤학자 여사, 소록도의 한센인을 온 마음으로 돌본 오스트리아 출신 마리안느와 마가렛 간호사 등, 좀 더 살 만한 세상을 만드는 디딤돌이 되길 자처한 이들에게 감사를 전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진심 어린 걱정과 위로를 담아 써 낸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비로소 ‘풍경’이 되어 다시 읽힌다. 섣불리 가르치려 드는 훈계조의 말, 날카롭고 편견에 찬 말에 지친 이라면 곁에 두고 찬찬히 읽을 만하다.
▎책 속에서
세상은 여러 가지 풍경으로 가득합니다. 풍경이라 하면 우선 아름다운 자연 풍경이 떠오릅니다만, 그 밖에 사람이나 사건 ․ 사물에 관련한 다정한 이야기도 풍경입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풍경도 있지만, 그것들은 접어 두고 아름답고 따뜻한 풍경 이야기로 세상을 여유롭고 풍성하게 만드는 데에 뜻을 두고 칼럼을 썼습니다.
-5쪽
“나는 누구인가?(Who am I?)”는 자신을 탐구하는 구도자적 생각으로 흔히들 하는 질문입니다. “너는 누구인가?(Who are You?)”는 그저 상대방을 알고 싶다는 생각에서 던지는 질문인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의구심을 갖고 던지는 도발적 질문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누구인가?(Who are we?)”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보다 그만 접었습니다.
-36쪽
자신의 양심이나 판단에 충실하지 못한 사람에겐 ‘가난은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견딜 수 없는 삶의 무게이고, ‘가오’는 떳떳이 내세울 것이 아니라 감춰 버려야 할 임시변통의 장식물에 불과합니다.
-66쪽
시는 절정으로 나아갑니다. 사랑이 때로는 어렵고 괴로운 일이지만, 그래도 사랑한 적 없거나 사랑받지 못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라는 시인의 생각. 더욱이 시인은 자신의 사랑 때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사랑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입니다. 타자(他者)에 대한 연민, 그것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기도 합니다.
-120쪽
‘슈톨퍼슈타인’이라는 낱말은 사전상으로는 ‘장애물’, ‘문제점’ 정도의 의미인지라, 걸리적거린다는 뜻의 ‘걸림돌’이라 번역해도 무방합니다. 그렇지만 설치 작업의 취지와는 딱 맞아떨어지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같은 돌이라도 활용하기에 따라서는 걸림돌도 될 수 있고 디딤돌도 될 수 있습니다. 길거리에서는 걸리적거리는 장애물이나 걸림돌로 보이지만, 불행한 과거를 딛고 미래로 나아가고자 하는 뜻을 담은 것이니 오히려 ‘디딤돌’이라고 번역해도 무방하겠다고 제 나름대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135쪽
‘이슬비 총리’라는 별명은 취임 100일을 맞아 행한 〈연합뉴스〉 최이락 기자와의 인터뷰를 계기로 붙은 것입니다. 최 기자는 저에 대하여 과거 경력에 비추어 존재감이나 색깔이 없는 총리라는 지적이 있다고 하면서 어떤 총리로 남고 싶은지 물었습니다. 조금은 서운했지만 옳은 지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답했습니다.
“존재감이나 색깔이 없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존재감이나 색깔이 없는 것이 나의 존재감이자 색깔입니다. 존재감이나 색깔을 만들려면 정치적 발언을 하고, 거칠게 싸움도 하고, 국민에게 근사한 말을 하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그러나 나는 이슬비 같은 총리가 되겠습니다. 이슬비는 조용히 내리지만 땅속으로 스며들어 대지를 촉촉이 적시고 싹을 틔워 꽃을 피우고 마침내는 열매를 맺게 합니다. 소나기는 시원스럽게 내리지만 때로는 모든 것을 쓸어버립니다. 조용히 내리는 이슬비가 열매를 맺게 하듯이 나의 작은 노력이 모여 국민의 이익으로 돌아간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것입니다.”
봄비는 조용히 내실(內實)을 다지고 싶은 저의 마음입니다.
-222~223쪽
외교가 지향하는 바는 완승(完勝)완패(完敗)가 아니라 각국이 유리하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51 대 49의 게임입니다.
-251쪽
영화 〈자전거 도둑〉을 생각하면 마음속에 떠오르는 사건이 있습니다. 사법연수생 시절 연수 일환으로 광주지방검찰청 검사 직무대리로 부임한 첫날 배당받은 사건입니다. 14세를 갓 넘긴 소년은 집안이 가난하여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공장에서 일해야 하는 처지였습니다. 겨울철 광주천을 따라 찬 바람 속에 먼 공장을 오가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자전거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다가 길가에 세워진 자전거를 발견하고 훔쳤고, 이내 붙잡히고 맙니다. 포승줄에 묶여 사무실로 들어선 소년은 창백한 얼굴에 나이보다 더 어려 보였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어릴 적 참새를 잡아 손안에 쥐었을 때 팔딱거리는 참새의 심장 박동이 느껴졌던 바로 그 느낌이었습니다.
-273쪽
평생 공직자로 근엄한 체하며 살아온 구각(舊殼)을 벗어 버리고자 했습니다. 그저 편하게 읽히면서도 무언가 느낌이 남는 글을 쓸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정색하며 거룩한 말씀을 전하기보다는 조금은 흐트러진 몸짓으로 더 인간적인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또 늑장을 부려도 좋은 주말 아침 햇살이 들어오는 거실 혹은 침대 위에서 차 한 잔을 마시면서 가볍게 만나는 저의 글이 독자들에게 작은 공감으로 전달된다면 저에게도 기쁨이 될 것 같았습니다.
-3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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