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는 왜 무기화 되었나? 미ㆍ중 갈등 속 기술패권의 향배는?
반도체 주권국가를 향한 대한민국의 생존전략을 찾아서
21세기 글로벌 반도체 산업의 지각변동 속에서 한국의 생존전략을 탐색한 책《반도체 주권국가》가 출간되었다. 대표저자인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각각 산업정책과 반도체 전문가로서 중기부에서 손발을 맞췄던 강성천 전 차관과 차정훈 전 창업벤처실장과 함께 집필했다.
박영선 전 장관은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연구한 ‘반도체 무기화’와 ‘패권국가의 전략’을 프레임으로, 반도체의 70년 역사와 현재의 반도체 세계지형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게 했다. 역사ㆍ경제ㆍ외교ㆍ과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반도체 전쟁의 승부를 가를 핵심요인을 짚고, 고래싸움 속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을 아주 명쾌하게 보여준다.
공직자 출신 저자들은 반도체 주권을 지켜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한국의 생존전략을 모색했다. 일본 기업과 경쟁하며 성장한 한국 반도체 역사, 메모리에 편중된 우리 반도체 생태계의 한계, HBMㆍ칩렛 등 첨단기술 트렌드까지 심도 있게 분석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부터 스타트업을 비롯해 반도체 수요기업인 현대ㆍ기아자동차까지 아우르는 미래 반도체 생태계 형성을 위해 국가적 역량을 결집해 추진해야 할 비책을 담았다.
미ㆍ중 갈등으로 격변하는 세계 반도체 산업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현재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선임연구원으로 활동하며 ‘반도체 무기화와 세계 패권’을 주제로 연구하고 있다. 중기부 장관 시절 반도체 중소기업 육성을 위한 정책을 마련해 강력하게 추진했고, 삼성전자에 한국 반도체 생태계에서 취약한 분야에서 중소기업을 함께 키워 보자고 제안할 정도로 국가 전략자산으로서 반도체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2023년 봄가을 하버드대에서는 ‘세계적인 반도체 전쟁’을 주제로 한 심포지엄과 세미나가 연달아 열렸다. 최대 쟁점은 중국 견제를 위해 미국이 꺼내든 반도체 무기화 전략이었다. 한국의 최대 경쟁자인 일본과 대만은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편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심포지엄에 대규모 사절단을 파견하는 등 기민하게 대응했는데, 더욱 긴장해야 할 한국 정부나 기업은 현장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박 전 장관이《반도체 주권국가》의 집필에 열정을 쏟은 이유이다.
중기부에서 손발을 맞췄던 강성천 전 중기부 차관과 차정훈 전 중기부 창업벤처실장이 박 전 장관을 설득해 책을 펴내기로 했고, 두 사람도 공저자로 참여했다. 강성천 전 차관(현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원장)은 1989년 공직에 입문한 이후 산업부에서 잔뼈가 굵은 최고의 산업정책통으로서 한국 산업정책의 역사를 꿰뚫고 있다. 차정훈 전 창업벤처실장(현 카이스트홀딩스 대표)은 20여 년간 반도체 분야에서 일하면서 글로벌기업, 엔비디아의 성장을 지켜본 엔지니어 출신 반도체 마케팅 전문가이다.
이 책에서는 “왜 반도체가 무기화되었는지 그리고 반도체 주권국가가 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그것이 대한민국의 운명과 미래를 어떻게 결정지을지”에 대해 썼다.
반도체 무기화와 패권국가의 전략
대표저자 박영선 전 장관은 1950년부터 현재까지 70년 반도체 산업의 역사와 미ㆍ중 갈등 속 요동치는 반도체 세계지형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관점을 제시했다. ‘반도체 무기화’와 ‘패권국가의 전략’이라는 프레임이 바로 그것이다.
베트남전 패배 이후 미 국방부는 윌리엄 페리(훗날 대북정책조정관)를 국방 차관으로 발탁해 반도체를 활용한 유도무기를 개발함으로써 무기시스템 혁신에 성공한다. 이를 발판으로 미국이 소련과의 군사력 경쟁에서 승리했고 동시에 실리콘 밸리가 번성하는 데 촉매제가 되었다는 것이 반도체 무기화의 역사이다.
반도체 미래 시장의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한 주요국들의 반도체 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미국의 패권을 넘보며 반도체 굴기에 막대한 정부지원금을 퍼붓고 있는 중국, 20년간 건설적 관여정책을 고수하며 중국의 성장을 방관하다가 중국 견제를 위해 세계 반도체 산업의 새판을 짜고 있는 미국, 반도체 강국으로의 부활을 노리는 일본,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 TSMC를 국가 안보를 위한 보험으로 내세우는 대만, 패키징 부문에 도전하는 싱가포르, 그동안 중국 등 동아시아 의존도를 높았으나 이제 반도체 생태계의 중심국으로 부상을 꿈꾸는 EU….
박 전 장관은 세계 반도체 전쟁의 전황을 전체적으로 살피는 넓은 안목, 본질을 꿰뚫는 언론인 출신 특유의 필치로 패권 경쟁의 핵심인 반도체 전쟁의 승부를 가를 핵심요인이 무엇인지 밝히고, 반도체 산업의 지각변동 속에서 대한민국이 현재 서 있는 좌표가 어디인지 정확하게 보여준다.
반도체 주권국가로 가는 길
이 책의 핵심 중 하나는 반도체 주권국가를 향한 한국의 생존전략이다. 이것은 공저자들이 미국 보스턴과 대한민국 서울을 줌(Zoom)으로 연결해 매주 이어간 치열한 토론의 결과물이다. 그래서인지 책장을 넘기다 보면 고래싸움 속에서 길을 잃을지도 모를 한국의 주권을 지켜야 한다는 공직자 출신 저자들의 절박한 심정과 무거운 책임감이 그대로 전해진다.
강성천 전 차관은 일본과의 반도체 경쟁에서 승리하며 반도체 강국으로 성장한 한국 반도체의 역사를 돌아보고, 2019년 산업정책비서관으로서 직접 관여한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 극복 과정의 긴박했던 순간들을 기록했다. 특히 반도체 부활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일본과 또 한 차례 대격전을 앞둔 시점에 반드시 곱씹어야 할 징비록도 남겼다.
차정훈 전 창업벤처실장은 현재까지 반도체 시장을 지배한 글로벌 기업들의 성공비결과 미래 시장의 주도권을 놓고 벌이는 게임의 법칙을 밝히고, 메모리에 지나치게 편중된 한국 반도체 생태계의 한계를 극복할 해법을 모색했다. AI반도체 선두주자인 엔비디아의 경쟁력이 무엇인지를 함께 일했던 CEO 젠슨 황, 소프트웨어 개발 엔지니어 등과 직접 겪은 일화를 통해 구체적으로 전한다.
박영선 전 장관은 메모리에서 선전하고 있는 한국 기업에 대해서도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메모리 반도체 첨단제품인 HBM 투자를 주저한다거나 해외 반도체 주요 기업 인수를 포기하는 등 뼈아픈 경험을 한 국내 기업들에 대해서는 경직된 기업문화와 의사결정 구조 문제를 지적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세계적 베스트셀러《칩 워》의 저자 크리스 밀러와 토론하며 HBM 패키징 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거나, 최근 각광받는 미래 공정기술인 칩렛 생태계를 선점할 수 있도록 정부의 적극적 지원을 촉구했다.
저자들은 대한민국이 반도체 주권국가로서 미래에도 반도체 산업의 주역이 되기 위해서는 급변하는 세계 반도체 흐름을 놓치지 않아야 하고 반도체 생태계 형성에 주력하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를 위해 30여 년 전 ‘21세기 과학기술 G7 국가 진입’이라는 간절한 꿈과 의지를 담아 추진했던 G7 프로젝트처럼 범국가적 관심과 역량을 모아 ‘G7 프로젝트 2.0’을 추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세상에 없던 기술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과학자들
박영선 전 장관이 미국 국제관계전략연구소(CSIS) 수석고문으로 있던 2021년 가을, 미국 첨단 과학기술 개발의 현장을 둘러본 견문록도 흥미롭다. 테슬라 무선통신 책임자인 딜런 김, 구글 신사업개발 담당 제프 전, IBM 양자컴퓨터 상용화에 기여한 한국인 백한희 박사, IBM과 대적하는 아이온 큐의 김정상 교수, 보스턴다이내믹스 창립자 마크 레이버트, 4족 보행 로봇의 세계적 권위자 김상배 교수(MIT), 웨어러블 반도체의 선두주자 김지환 교수(MIT), 융합바이오의 새지평을 연 글로리아 최(MIT 신경생물학)와 허준렬(하버드대 면역학) 한국인 부부 교수…. 미래 산업 전쟁의 최전선에서 세상에 없던 과학기술을 만들어 나가고 있는 과학자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귀한 경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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