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rt to Heart] 출판의 길 40년, 나남출판 조상호 회장 편
매체명 : 아리랑TV   게재일 : 2017-07-10   조회수 : 2856

출판의 길 40년, 나남출판 조상호 회장 

A Master of social science publishing in Korea spent his entire life with books



나남출판사 회장 조상호는 지난 38년 동안 수많은 사회과학 서적을 발행했습니다. 책에 온 생애를 헌신한 그는 10년 전 나무와 사랑에 빠졌고 자신의 수목원을 만들었습니다. 오늘 〈Heart to Heart〉의 주인공은 한국 지성인이자 출판인인 조상호입니다.

(Nanam Publishing house chairman Cho Sang-ho has written numerous social science books over the past 38 years. Having dedicated his entire life to books he fell in love with trees 10 years ago, and created his own arboretum. Today on Heart to heart, Korean intellectual and publisher Mr. Cho Sang-ho.)


 

조상호(나남출판・나남수목원 회장): 누구나 삶이 그러하듯, 가장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해서 직업으로 갖는다면 그런 행복이 없겠지요. 출판 40년을 해 나가면서도 이것이 소명이라는 생각을 더욱 올곧게 하려면 이런 수목원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랜 꿈이었습니다.

 

오늘 여기서, 조상호 회장과 함께 책과 나무에 관한 인생과 생각을 나누겠습니다.

(He is here today to show the story of his life and his thought on books and trees.)


 

출판인 조상호와 그의 나무 사랑

Publisher Cho Sang-ho and his love for trees


Jennifer C.(사회자): Welcome to 〈Heart to Heart〉. 오늘 함께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먼저 지금 시청하고 계시는 분들께 짧게 인사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조상호: 나남출판사와 나남수목원을 같이 하고 있는 조상호입니다. 반갑습니다.



흔적을 남기고 싶은 욕망

Human’s desire to leave their traces in the world


Jennifer: 나남출판사하고 나남수목원을 말씀하셨는데 수목원 안에 책박물관을 지어야겠다고 결심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조상호: 이 나남출판사를 한 40년 가까이 운영하며 살았죠. 그런데 사람들에겐 전부 기록을 남기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인쇄매체인 출판저널리즘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또 기록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이 하나의 권력일 수도 있죠. 지성의 열풍지대에서 제 꿈과 땀으로 일군 책들을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담아 두고 싶었습니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질풍노도의 삶을 살았다는 궤적을 남기고 싶은 욕망일지도 모릅니다. 18년 전부터 수목원을 준비하면서 거기에 꼭 책박물관을 만들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책으로 사회적 아젠다를 만들 수 있는 언론출판의 일업일생이 남긴 흔적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책박물관을 이곳 수목원 숲속에 만듦으로써 문화의 사각지대인 포천지역의 문화창달 공간도 되겠지만, 출판사를 40년 운영한 제 기록들과 또 좋은 선배들의 아카이브를 거기에 둠으로써 후배들에게, 어린 세대에게 문화가 계승되고 전달될 수 있는 한 상징으로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백제금동대향로 등 애장품 공개

Shared his treasures such as the Great Gilt-Bronze Incense Burner of Baekje


조상호: 책박물관 안에는 백제금동대향로 실물 크기의 복제본을 모셨습니다. 24년 전 충남 부여에서 발굴된 찬란한 한국문화의 정수인 64cm 정도의 대형향로입니다. 이 향로로 의식(儀式)을 치렀을 화려하고 웅장했을 궁궐을 상상해 보십시오. 우리 선조가 5, 6세기 때 중국 요하와 황해를 포함한 해상 대제국을 이루었다는 흔적일 수 있죠. 불 뿜는 용의 용틀임처럼, 봉래산의 신선 같은 유유자적한 여유로 출판사에서 24년 동안 저를 지켜주었던 수호천사였기도 했습니다. 이런 실물 크기의 복제본을 만나기는 어려울 겁니다. 물론 원본은 부여박물관에 우리나라 국보로 있죠. 그 기개와 기상을 책박물관의 방문객에게 보여드렸으면 좋겠다 싶어서 모셨고요.

황지우 시인이 한동안 조각을 했습니다. 한국에서 유명한 시인 중 한 분이시죠. 황지우 시인의 조각 〈멀어지는 다도해〉와 중앙대 미대 김선두 교수의 대작 100호 〈서편제〉도 책박물관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 두 분은 나와 소설가 이청준 선생의 오랜 인연 속에 함께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겪고, 아끼던 것들을 전부 모아 책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일반에 공개하는 자리로 만들었습니다.



책 향기를 느끼며 올곧은 기상을 배우는 공간

A place where young people can learn from the virtues of books


Jennifer: 정말 많은 공을 들여 문을 열게 되셨는데요. 이 책박물관이 어떤 공간이 되기를 바라시나요?


조상호: 물론 시내 가까운 곳에도 박물관이 있고, 국가 공공단체의 박물관도 있지만 어지러울 만큼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넓고 울창한 수목원의 숲 향기가 가득한 책박물관에서의 의도된 한가로움을 누리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나남수목원의 책박물관은 책이 갖는 사명이 그러하듯, 올곧게 살았던 기록들과 그 향기를 같이 느끼면서 비겁하게 살지 않는 기상을 배웠으면 합니다. 특히, 젊은 청소년들이 와서 배우는 공간이었으면 싶습니다. 마지막 광복군인 김준엽 선생의 《장정》이나 조지훈 선생의 《지조론》을 통해서는 비겁하게 살지 말자는 교훈을 얻었으면 싶습니다. 할아버지와 손자가 함께 공유하는 현장에서 책 이야기를 통해 좋은 전통이 계승되는 기회도 될 것입니다.


조상호 회장은 책에 온 생애를 바쳤습니다. 그러다 2008년, 오랜 꿈을 이루고 인생의 새로운 막을 열었습니다. 경기도 포천에 수목원을 개장했고 올해는 책박물관이 개관을 앞두고 있습니다.

(Chairman Cho Sang-ho spent his entire life with books. Then in 2008, he turned his longtime dream into reality and started new chapter in life. He opened the botanical garden in Pocheon Gyeonggi-do Provence and book museum is ready to open this year.)



책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편한 공간

The most comfortable space where visitors can enjoy books


조상호: 책박물관 개관 후 여러 사람이 찾고 싶다, 오고 싶다고 하는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만 데이터를 좀더 정리해야 할 것 같고요. 또 어떻게 하면 책의 향기를 편하게 느낄 수 있을지, 무엇을 더 준비해야 할지 많이 고심하고 있습니다. 



책박물관의 방문객, 오생근 교수와 가족

A visitor at the book museum, Professor Oh Saeng-Keun and his family


조상호: (오생근 교수의 아들에게) 우선 이것부터 봐라. 네가 조금 더 나이가 들면 저 얼굴처럼 된단 말이야. 아들이 아버지의 여러 모습을 가장 많이 알겠지만 학자인 아버지의 모습은 책을 통해서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거거든. 그렇죠?



거대한 사상의 원천, 책박물관

A book archive to discover huge intellectual sources


조상호: 학자 한 분이 돌아가시는 것은 큰 도서관 하나가 없어지는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책박물관이 그분들의 흔적을 이렇게 모아둘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 봅니다. 많은 사람이 책박물관에 오셔서 거대한 사상의 원천을 직접 느낄 수 있다면 참 다행이겠다 싶습니다.



유혹으로부터의 도피안, 나남수목원

A botanical garden as a shelter from many temptations


Jennifer: 출판사를 운영하시는 분이 이렇게 책박물관을 만드는 것은 그리 낯설지는 않은 일인데요. 그런데 출판에만 전념해 오신 회장님은 어떻게 해서 수목원을 만드셨는지요.


조상호: 한국적인 상황에서 사회과학 출판사를 운영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길임은 틀림없습니다. 그럼에도 출판사를 한 40년 가까이 성장시켰습니다. 어렵게 키운 출판사가 우뚝 선 나무처럼 존재감이 드러나면서 지성의 숲을 이루기 시작했습니다. 

출판 일을 하면서도 한국사회 변동 굽이굽이마다 유혹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일업일생을 해나가면서도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조그만 유혹에 많이 빠질 수 있죠. 젊은 날, 군사독재 정권을 극복하려는 학생운동 출신은 정권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감시받았기 때문에 직업 선택이 자유스럽지 않았지요. 그렇게 어렵게 시작한 언론출판인데 한 30년 가까이 지나니 손에 잡힐 만한 유혹들이 오기 시작하는 겁니다. 흔들리지 않기 위해 조그만 도피안 같은 공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출판사를 하면서 나무를 심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내가 가는 길에 희망을 걸며 중심을 잡으려고 묘목 밭을 일구는 노동을 자청해 자신을 학대했는지도 모릅니다. 나무는 나를 지켜내 주는 그 이상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저의 《나무 심는 마음》이라는 책에도 고백했습니다만 처음에는 내 본업인 출판사를 일업일생으로 지켜야겠다는 목적으로 수목원을 시작했는데, 이 나무라는 생명에 대한 애착이 그렇게 생기는 겁니다. 이 생명에 대한 애착이 자연의 생태계 안에서 제가 동화될 수 있는 계제가 됐죠. 그래서 오늘날 한 20만 평의 수목원이 된 겁니다. 가까운 미래에 지구별에서의 소풍을 마치고 떠나며 이곳에 왔던 선물로 사람들에게 녹색공간을 남기고 싶은 마음입니다.



반송, 가장 처음 심은 나무

Pine, the first tree he planted


Jennifer: 엄청나게 큰 공간인데요. 지금 나무 심는 것에 관해 말씀하셨는데, 혹시 기억하시나요? 제일 처음으로 직접 심으신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


조상호: 제가 처음 심은 나무가 반송 3천 그루인데 지금 5년째 키우고 있습니다. 한국 사람에게 좋아하는 나무 순위를 꼽으라면 대개들 첫 번째로 소나무를 얘기할 겁니다. 소나무는 굳은 절개를 나타내고 강인한 자연환경을 이겨내는데, 한국 고유의 어떤 상징이기도 하죠. 반송은 키가 크지는 않지만 아주 아름답습니다. 더디 자라지만 나무 수형 자체가 사람 마음을 평안하게 합니다. 


Jennifer: 3천 그루요? 엄청나게 많습니다.


조상호: 3천 명의 자식이죠. 생태계의 자연스런 질서인데도 장송 밑에 떨어진 솔방울 밑에서 봉긋이 고개를 내민 아기 소나무들에 생명의 신비를 느낍니다. 앙증맞고 귀여운 손자처럼 그들만의 하늘을 갖기 시작한 모양입니다. 꿈나무들인 이들이 무탈하게 자라 그 푸르름을 떨치기를 기원합니다. 봄날 열아홉 살 난 3천 그루의 반송들이 고함처럼 내지른 새순들의 열병식은 감동 그 자체입니다. 송홧가루 날리는 윤사월의 수목원은 격동하는 푸르른 생명의 저수지입니다. 도회지의 욕망에 발버둥치는 마음이 그렇게 작아지고 부끄럽게 만듭니다. 폭설은 태고의 정적으로 잠시 묻히지만 가뭄 끝의 폭우를 온몸으로 마주 받는 나무의 강건함을 닮고 싶습니다.



나무를 공부하며 다양성의 오케스트라를 배우다

Studied about trees and learned about diversity like an orchestra


Jennifer: 평생을 책과 함께 해오셨는데, 그럼 나무 공부는 따로 하신건가요? 


조상호: 나무 심는 경우만이 아니라 어느 일이든지 다 똑같을 겁니다. 자꾸 발품을 팔아야 한다는 뜻이죠. 그러니까 흔히들 하는 말로 독학(獨學)입니다. 우선 국내에 이미 있던 수목원을 전부 다 돌아봤고요. 미국에서도 뉴욕주립대 농과대학이 코넬에 있는 거 아시죠? 거기도 가봤습니다. 독일 뮌헨에 가면 프랑스풍, 영국풍 큰 공원 두 개가 있고요. 또 일본 신주쿠에 가도 큰 공원이 있습니다. 전부 발품을 팔면서 공부했습니다. 그다음에 묘목들을 심었는데 제가 공부가 부족해 죽이기라도 하면 죄스럽기도 하고요. 

판사는 판결문으로 말하고, 출판인은 도서목록으로 발언한다면, 수목원은 수종으로 말합니다. 수목원을 가꾸는 일은 내가 사랑하고 나의 스토리텔링이 되는 나무를 내가 심고 가꾸는 과정이었습니다.

사람 사는 것도 그렇죠. 다양성이라고 흔히 얘기를 합니다만 단지 여러 가지가 모아진 게 다양성이 아니잖아요. 분야별로 알찬, 여러 가지 형태의 삶이 모여서 합창이 되어야 하는 거죠. 자연을 보면 노란 단풍도 있고 빨간 단풍도 있죠. 하얀 나무가 있고 까만 바위가 있죠. 각각의 뚜렷한 개성을 가진 여러 가지가 한데 어우러지는 오케스트라의 합창을 자연에서 직접 배웠습니다. 동이불화(同而不和)가 아닌 진정한 화이부동(和而不同)의 경지가 그것입니다.

 

또한 조상호 회장은 스스로 나무 공부를 한 뒤 수목원을 열었습니다. 나이가 70에 가깝지만, 속도를 늦추거나 쉬운 길로 가려하지 않습니다.

(He has also opened the botanical garden after studying trees on his own. He is close to 70 but he is not about to take it slow and easy yet.)



생명에 대한 애착 그리고 정신・육체적 휴식처

An affection for living things and a place of mental and physical healing


조상호: 이 반송의 새순을 보세요. 가운데 순이 유별나게 크지요? 큰 순은 잘라내면 다른 순들에게 양분이 갈 수 있게 계속 순들을 다듬는 거예요. 그러면 둥근 1/3의 예쁜 반송모양이 되는 겁니다. 생명에 대한 애착입니다. 이것 보세요, 8년 동안 이렇게 잘 자라잖아요. 자라면서 내가 조금 다듬어주면 좋아하고. 내가 조금 더 예뻐해 주면 말은 통하지 않지만 희희낙락하는 것 같아요. 자기 삶에서의 무념무상한 공간이 있어야 되고 그런 시간들이 있어야 됩니다. 그리해야 자기가 하는 일을 원래 계획했던 대로 외롭더라도 자신 있게 지치지 않고 계속 해나갈 수가 있죠. 


그는 수목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소풍과도 같다고 합니다. 나무를 가꾸고 자연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그의 행복입니다.

(He said that spending time in his botanical garden is like being on a picnic. Taking care of trees and spending time in nature is his way of happiness.)



나무를 닮고 싶어 나무처럼 살다

Live like trees to look and age like trees


조상호: (수목원 연못에서) 수련도 예쁘게 피었죠? 물이 닿지 않게 수면 위로 잎을 내는 것이 연꽃이고, 수면에 잎을 펼치는 것이 이 수련입니다. 한자로 수련(水蓮)이 아니고 수련(睡蓮)입니다. 저녁이 되면 꽃봉오리가 잠자는 듯 오므라들어서 붙여진 이름이지 싶습니다. 지금 한창인 자귀나무 꽃도 이와 같습니다. 어느 것이나 다 의미 부여하기 나름입니다. 책이나 자연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나무를 직접 만져보고, 숲에서 숨 쉬고 하면서 그 의미가 달라집니다. 나무를 닮고 싶고 나무처럼 늙고 싶고, 그러려면 나무처럼 살아야 될 것 아닙니까.



출판 저널리즘으로서의 언론과 사회과학 출판

A social science publishing house as a detours for journalism


Jennifer: 회장님께서 법학을 전공하셨다고 들었어요. 법학을 전공하셨지만 원래는 기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라고 들었는데요. 왜 그 길을 계속 가지 않으시고 이렇게 출판사를 여실 생각을 하셨나요?


조상호: 40, 50년 전에는 군사독재시절이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직업의 선택지가 그렇게 넓지 않았습니다.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싶어도 군사 정권이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제한을 많이 받았죠. 어떤 길을 가고자 하는데 고난에 부딪혔을 때 에둘러 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시대 상황에서는 언론출판이라는 이 길이 기자가 되는 길을 에둘러가는 길이었죠. 그래서 저는 사회과학 출판을 선택해 시작했는데요. 비즈니스로 시작한 출판이라기보다는 언론 활동에 또 다른 방법으로서 이걸 시작했습니다.



젊은 세대를 위한 언론서적 출판

Publishing journalism for younger generations to become journalists


Jennifer: 그래서 1979년 5월이죠. 지금의 나남출판사를 처음 세우셨는데요. 출판사 중에서도 당시로서는 생소한 신문방송학, 말씀하신대로 지금의 매스커뮤니케이션 책, 그리고 또 사회과학 서적을 많이 출간하셨어요. 지금 간단히 말씀해 주시긴 하셨지만, 그런 책들에 특별히 집중하신 이유가 있었나요?


조상호: 지성의 열풍지대― 처음 출판을 시작하면서 사상과 자유가 편견 없이 교통할 수 있는 그런 열린 공간을 꿈꾸었습니다. 언론학이 사회과학의 한 영역으로 자리 잡기 시작할 무렵 마침 대학에 신문방송학과와 광고홍보학과가 유행처럼 개설되어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고, 군부독재의 종언으로 재갈 물렸던 언론의 말문이 트여 정보의 호수를 이루었습니다. 그때 오택섭 교수가 강현두・최정호 교수와 함께 쓴 《매스미디어와 사회》를 시작으로 펴낸 언론학 서적들로 나남은 ‘언론학 전문출판사’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쉽게 팔리지 않지만 오래 팔린다’는 모토로 다양성과 차이를 포용하는 나남이라는 지적 저수지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학생운동 이력 때문에 군사독재 정권의 방해로 기자가 바로 못 되었지만 기자가 되려는 젊은 후배들이 공부할 수 있는 책을 내가 만든다면 그 꿈을 이렇게 에둘러 성취하려는 의도였지요. 제 출판사 책으로 공부한 많은 사람들이 기자가 된다면 대리보상을 받는 통쾌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나대신 수천 명의 올곧은 사람들이 신문 방송 현장에서 제 역할을 하는 것 같아 보람을 느낍니다. 지금도 출판사를 성지순례 하듯 찾아와 나남 책으로 공부했다는 수줍은 안부를 전하는 처음 보는 언론사 후배들을 만날 때가 가장 행복한 날입니다. 이런 책을 통해서 결과적으로 제가 가야 할 언론출판의 길을 다른 숱한 사람들이 가게 된 거죠. 신문방송학이 40년 전에는 그렇게 인기가 있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회과학 학문으로서 특화된 커리큘럼이 준비된 것도 없었고요. 황무지에 언론학 출판의 거탑(巨塔)을 세우고자 했습니다. 커뮤니케이션 교과서만이 아니라, 현직 신문기자, 방송기자 피디들의 추상같은 칼럼과 경험담 등을 출판했습니다. 



나남의 책: 커뮤니케이션, 《장정》 그리고 《토지》

Nanam’s books: Communication, Long March, and The Land


Jennifer: 아까도 잠시 잠깐 언급했지만, 나남출판사에서 그동안 출판된 책이 3천 5백여 종에 이르는데요. 혹시 어떤 책들인지 기억을 다 하시진 못하시겠지만, 많이 기억하시나요?


조상호: 기억해야죠! 모두 제가 낳은 자식인데요. 어머니는 쌍둥이도 다 구별한다고 하듯 다 내 손때가 묻고 직접 같이 껴안고 발버둥 친 책들입니다. 처음에는 신문방송학과 교과서, 기존 언론인의 언론 비평집, 커뮤니케이션 책이 아무래도 제일 많았습니다. 고려대 오택섭 교수의 《사회과학데이터분석법》은 거의 모든 학교에서 교과서로 쓰였고, 이후 《매스미디어와 사회》를 필두로 5백여 권의 커뮤니케이션 책들이 주류를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이 시대 마지막 광복군(光復軍)인 김준엽 고려대 총장님입니다. 그분 회고록인 《장정》(長征), 영어로는 Long march죠, 《장정》 책 다섯 권을 25년 동안 계속 출간했지요. 김준엽 총장님은 광복군, 학자, 대학총장 등 다양한 삶의 여정에서 한결같이 올곧은 기개를 보인 분으로, 제가 개인적으로 아버지처럼 모시고 존경한 분입니다. 총장님은 1986년 한국현대사 《장정》(長征)― ‘나의 광복군(光復軍) 시절’을 펴내며 만났습니다. 새 시대 젊은이들에게 분단된 반도의 움막에서 벗어나 선조들이 조국광복을 위해 투쟁했던 광활한 대륙의 기상을 전달하고 싶었고, 개인의 영달을 위해 일제에 곡학아세(曲學阿世)했던 사람들에게는 ‘역사의 신(神)’이 엄존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김구 선생 전집》 등 항일 무장투쟁이나 독립운동사 출판이 줄을 잇게 된 것은 그런 연유였습니다.

군사정부 시절인 1987년 우리시대의 대기자 김중배 선생의 칼럼집 《하늘이여 땅이여 사람들이여》는 언론출판의 횃불이었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아무래도 출판의 기본일 수 있는 문학 책들입니다. 이청준 문학선 《황홀한 실종》을 시작으로 작년 김우창 문학선 《체념의 조형》까지 한국의 주목할 만한 소설가, 시인, 평론가의 책을 ‘나남문학선’으로 30년 동안 만들었습니다. 그 동안 50분을 모셨고, 지금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1980년 중반에는 미국 텍사스대 김대식 교수의 영문 태권도 책 7권도 출판하여 많이 수출했고, 미주리대 선우학원 박사의 20th Century Korea 출판도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다음으로는 읽어보셨을는지 모르겠습니다. 읽기를 권합니다만, 박경리 선생의 《토지》입니다. 그 21권을 2002년에 만들었지요. 겨레의 큰 스승 《김구 선생 전집〉 12권, 참스승 큰 시인 조지훈 선생의 《지훈 전집》 9권,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의 번역서들-《성의 역사》, 《감시와 처벌》, 《광기의 역사》, 독일의 철학자 막스 베버 선집들-《직업으로서의 학문》, 《직업으로서의 정치》, 《종교사회학 선집》 등, 위르겐 하버마스의 번역서들-《공론장의 구조변동》, 《의사소통행위이론》 등, 중국의 《홍루몽》 6권 완역까지 동서고금을 넘나들었습니다.



지훈 선생의 지조, 《조지훈 전집》 그리고 지훈상

Cho Chi-hun’s Integrity, collection of his books and prize named after him


Jennifer:  조상호 회장님은 화려한 인맥을 자랑하고 계시기도 합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인생의 모델이나 스승으로 삼고 계신 분이 있으신가요? 있다면 그 이유도 함께 말씀해주세요. (듣기로는 조지훈 선생을 존경해 출판사 건물 이름도 또 아들 이름도 ‘지훈’이라 지었다고 알고 있는데)


조상호: 지훈(芝薰) 선생을 흐릿하게나마 인식하게 된 것은 고등학생 때였습니다. 문학강연 등 문화행사라고는 했지만 대학선전의 일환으로 열린 ‘고대(高大)의 밤’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당대의 지성인들이 대거 동원된 좀처럼 접해 볼 기회가 없는 교양강좌이기도 했지만, 없는 것을 갈구하는 젊음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 먼발치에서 본 한복 차림의 고고한 선비의 강연 모습만은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강연내용은 기억에 없는데 무엇인지 모를 신선한 충격과 지사(志士)라는 말이 큰 바위 얼굴처럼 겹쳤습니다. 더 정직하게는 풍우(風雨)에 약간 마모된 내 안의 미륵불 같은 모습을 발견한 것 같았습니다. 

성장과정에서 길을 헤맬 때마다 바른 길을 밝혀주는 북극성(北極星) 같은 어른을 내 마음 속에 모시고 있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그때그때 백척간두(百尺竿頭)의 극한상황에서도 진일보(進一步)하는 결단도 사실은 나의 용기나 지혜라기보다는 스승의 큰 가르침에 따르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천길만길 벼랑 끝에 내몰렸다고 해서 갑자기 무릎을 꿇고 빌 수도 없고 되돌아 갈 수는 더욱 없습니다. 이제까지 왔던 그 걸음으로 늠름하게 한 발자국 더 내딛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지훈 선생의 글을 다시 읽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시중에서 구할 수 없었던 지훈 선생의《한국민족운동사》를 단행본으로 출간했습니다. 1926년 6·10 만세사건의 항쟁사인 이 책은 청록파 시인의 유장함보다 먼저 심금을 울렸습니다. 그의 한국문화의 도저한 흐름을 영어로 번역하여 외국에 소개하고 싶다던 이인수 교수의 요청으로 썼던 《한국문화사 서설(序說)》이나, 많은 젊은이들이 삶의 지표로 삼았던 당당한 사자후(獅子吼)였던 《지조론》은 거짓과 비겁함에 질식할 것 같았던 한국사회의 격동기를 늠름하게 헤쳐 나오는 선생의 기개에 압도당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지훈 전집》 출판만이 아니라 ‘지훈상(賞)―지훈문학상, 지훈학술상’을 17년째 이어온 인연의 시작이기도 했지만, ‘고교생 때 한 번 봤다고 그토록 존경할 수 있느냐’고 묻는 이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사숙(私淑)은 그런 거라고 믿습니다. 선생이 타계하신 지 49년이 됐지만 여전히 그의 선비정신을 우러릅니다. 


 

《김약국의 딸들》과 《토지》, 사회과학 서적 출판의 자본이 되다

The Daughters of Pharmacist Kim and The Land helped publish the books of social science


조상호: 아까 말씀 올린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도 있는데요. 박경리 선생님은 학생운동 때 저희를 많이 지도해 주셨던 김지하 선배님의 장모님이 되신 인연으로 만났습니다. 박경리 선생님의 《김약국의 딸들》은 1993년에, 《토지》 21권 전집은 2002년에 출판했는데, 밀리언셀러가 됐습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경구처럼, 박경리 선생님의 작품이 밀리언셀러가 되어 그 수익금이 수백 명의 사회과학자, 가난한 학자의 학술서적을 낼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박경리 선생님 얼굴도 모르는 사회과학자들의 학술서적을 그 자본으로 만들 수 있었죠. 그래서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가 돕는다’와 같은 뜻이겠지만, 의지를 갖고 한 분야를 열심히 하면 결국 눈에 보이지 않는 도움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주역(周易)〉의 적선지가(積善之家) 필유경(必有慶)이라는 말이 그러합니다.



주변 사람들을 통해 본 조상호 회장

What others say about Chairman Cho


오생근(서울대 명예교수): 나무를 심고 나무를 가꾸면서 인생을 많이 생각하는 분입니다. 삶의 의지 같은 것이 정말 본받을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조상호 회장을 내가 알게 된 것은 1970년대 초 군대시절(강원도 화천에 있는 7사단 8연대)이었습니다. 지금부터 한 40~50년 전이겠지요. 그때 시위 관련해서 많은 대학생이 군대로 징집되었고 또 거의 전부 전방으로 오게 됐는데 조 회장은 그중 한 사람이었죠. 조 회장은 전방으로 온 이등병이었고 저는 병장이었습니다. 그때 알게 됐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 40~50년 가깝게 지냈는데요. 사실 그때 만났을 때는 이렇게 인연이 길게 이어질 줄 몰랐습니다.

조 회장은 저보다 몇 년 후배인데요. 저는 그동안 지내오면서 조 회장이 저보다 인생에 있어서 훨씬 선배 같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삶의 체험이 나보다 훨씬 많다,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조 회장이 그동안 지내 온 것을 보면, 평소 생각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제가 많은 것을 배웁니다. 그래서 오히려 조 회장은 후배라기보다 선배같이 느껴질 때가 참 많았습니다.

지금 이렇게 나남수목원을 만들고 또 나무와 숲을 크게 가꾸고 이런 일들도 보통 사람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이런 엄청난 일을 하는 걸 보면 정말 이 사람이 보통 대단한 사람이 아니구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저는 조 회장을 아주 좋아합니다. 조 회장을 만나면, 단순히 옛날부터 사귀어 온 그런 사람으로서만이 아니라 정말 깊은 의리와 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마음 든든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자 인생의 동료로서 정말,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데 큰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조 회장은 출판사 회장을 오래 해서 책이나 글에 대한 욕심이 많습니다. 좋은 글이 있으면 그 좋은 글을 쓴 저자를 찾아서 그 사람 책을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입니다. 책에 대한 욕심뿐만 아니라 또 사람에 대한 욕심도 많습니다. 그러니까 본인이 판단하기에 좋은 사람이면 그 사람과 어떻게 해서든지 사귀고요. 그 사람과 가깝게 지내면서 그 사람을 통해서 뭔가를 배우려고 합니다. 저에게도 사람들에 관한 얘기들을 참 많이 하는데요. 자기 욕심뿐만 아니라 사람 욕심이 많은,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병문(나남출판 직원): 무엇보다도 열정적이십니다. 직원들이 어떻게 잘 지내는지 하나하나 물어보면서 안부를 묻는 저희 회장님이 좋습니다.


박새리미(나남출판 직원): 항상 카리스마 있으시고 멋있으신 회장님, 항상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김태헌(나남출판 직원): 항상 건강하시고 나남출판사 더 오랫동안 갈 수 있도록 많은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 회장님 사랑합니다.



나무에게 배우는 조화로운 삶의 지혜

The wisdom of life in harmony learned from trees


Jennifer: 회장님께서 38년, 거의 40년 동안 한 길만을 걸어오셨는데 혹시 한 번이라도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보셨나요?


조상호: 젊었을 적 한국사회에서는 그렇게 여유가 있지 않았습니다. 그 시대상황에서 자신을 지키려면 출판사를 소명(召命)으로 알고 일해야 했습니다. 다른 분야에 진출할 기회가 없지 않았으나 한눈팔지 않고 출판에 매달리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녹색공간인 이런 20만 평의 수목원에 묻힐 수도 있게 된 것이지요. 일업일생으로 3천 명이 넘는 많은 사람들과 만나 같이 고민할 수 있는, 지성의 열풍지대와 같은 이러한 광장이 얼마나 좋습니까! 저도 배우고 저도 성장하니까요. 특별히 나무를 통해, 출판을 통해서라기보다는, 사람 사는 과정들이 다들 그러지 않겠는지요. 어떤 합창의 하모니를 이루려고 할 때, 내 몫을 열심히 해야 합창이 되는 거죠. 각각의 개성을 가진 여러 사람이 합창하는 화합이 되는 것입니다. 자연에서 늘 생태계 성장과정만을 배운다기보다는 나무 속에서 오히려 우리 사람 사는 세상의 지혜를 얻는 게 참 많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Jennifer: 오늘 정말 멋진 이야기 많이 해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요. 또 회장님의 철학에 대한 얘기를 들으면서 많은 것을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다시 한 번 함께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조상호: 감사합니다.

 

 

 

아리랑TV | 2017. 7. 10. 

[Heart to Heart] 제 46회 | 출판의 길 40년, 나남출판 조상호 회장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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