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념무상의 숲…마음 건강이 절로 찾아오죠”
매체명 : 한겨레   게재일 : 2014-07-10   조회수 : 1796
한겨레 | 2014. 7. 10.

“무념무상의 숲…마음 건강이 절로 찾아오죠”


[건강과 삶] 수목원 가꾸는 출판인 조상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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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은 그에게 거친 세파의 탈출구이자,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유지하게 해 준 보금자리였다. 

조상호 나남출판사 회장이 자신이 직접 7년째 가꾸는 경기도 포천 나남수목원의 오솔길을 여유롭게 걷고 있다.


 

수목원 한가운데 자리잡은 호숫가 모퉁이에 자라고 있는 앵두나무를 쓰다듬는다.

 

무성한 이파리에 따뜻한 햇살이 눈부시게 반사된다. 

 

“이렇게 환호작약하는 나무를 봤나요?”

 

평범한 나무에 그는 ‘환호작약’이라는 표현을 쓴다. 

 

“13년 동안 키우는 나무입니다. 호숫가 비탈진 땅에 심었는데 제자리를 찾아 잘 자라고 있어요.” 

 

그런 이야기를 하는 그의 표정이 나무보다 더 환하다. 땅에 뿌리박고 사는 한 그루의 나무에 ‘환호작약’(歡呼雀躍ㆍ크게 소리치며 기뻐하며 뛰어다님)의 느낌을 받을 수 있다면 삶이 얼마나 풍성할 수 있을까?

 

“때로는 아마추어가 큰일을 저지르곤 합니다. 독학으로 익힌 지식으로 수목원을 가꾸고 있어요.”

 

경기도 포천군 신북면의 산비탈 20만평에 ‘나남수목원’을 7년째 가꾸고 있는 조상호(64) 나남출판 회장은 35년간 지식산업에 종사한 출판인이다. “‘나’와 ‘남’이 함께 어울리는 지식의 저수지를 만들겠다”는 포부로 시작해 이미 2000여종의 책을 낸 대형 출판사의 경영인에서 삼림 가꿈이로 변신하고 있는 조 회장은 “우주에서 지구에 잠시 소풍 나온 인생이니, 소풍 나온 기념으로 수목원을 가꾼다”고 말한다.

 

소풍을 나온 들뜬 마음 때문일까? 커다란 밀짚모자를 눌러쓰고, 흙이 잔뜩 묻은 등산화를 신은 조 회장의 헐렁한 바지 뒷주머니엔 가지 자를 때 쓰는 가위가 꽂혀 있다. 건강한 하얀 이를 모두 드러내고 파안대소하는 그의 모습엔 긴장감이 없다. 그가 나무와 대화를 나누며 땅과 가까이한 지 벌써 20년이 됐다. 


 


 

“처음엔 사철 푸른 소나무가 좋았어요. 시간이 지나면서는 낙엽송에 마음이 끌렸어요. 겨울에 나뭇잎을 모두 떨어뜨린 채 나목으로 있던 나무들이 봄이 되면 새싹이 돋으며 엄청난 생동감을 주곤 했어요. 그 생명력을 가까이서 보니 나무에 너무나 큰 고마움을 느낍니다.”

그에게 나무는 ‘탈출구’였다. 힘든 세파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나만의 공간을 만들려는 노력이기도 했다. “남들은 나무를 베어 만든 종이를 매개로 하는 직업이기에 나무에 어떤 원죄의식을 갖고 있어서 나무를 심고 가꾸느냐고 묻지만 그런 거창한 이유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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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호 나남출판사 회장



70년대 고려대 학생운동권 ‘대부’
부실채권 임야 떠안은 계기로 나무 공부 시작해 수목원 설립

“산 오르내리니 몸도 튼튼해져

수목원 함께할 3000 회원 모아요”

전남 장흥이 고향인 그는 고려대 법학과 70학번으로 입학해 법조인이 아닌 기자를 꿈꾸며 고대 지하신문인 〈한맥〉에 글을 쓰는 ‘운동권 기자’가 됐다. 당시 그가 쓴 기사를 북한 〈노동신문〉에서 인용한 것이 문제가 돼 경찰의 수배를 받았다. 강원도 원주의 원주천변에서 두 달간 넝마주이로 살며 도망 다니다가 붙잡혀 군에 강제징집된 조 회장은 제대 후 복학해서 고려대 운동권의 대부가 됐다.

졸업하곤 수출입은행에 취직했던 조 회장은 몇 년 만에 사표를 내고 조그만 출판사를 차렸다. 

 

“출판을 통해 어떤 권력에도 꺾이지 않고, 한국 사회의 밑바닥에 뜨거운 들불처럼 흐르는 힘의 주체를 그리고, 권력에 안주하는 제도 언론을 대신해 출판 저널리즘을 꽃피우고 싶었어요.”

“나무를 처음엔 촘촘히 심어야 잘 자랍니다. 작은 묘목은 풀과 덩굴에 차이며 큽니다. 일정 기간 큰 다음엔 뽑아서 다시 띄엄띄엄 심어야 합니다. 나무도 인간과 같은 성장 과정을 겪어요. 일단 자리를 잡으면 잘 자라기 시작합니다. 그때까지 몸살도 앓고 진통도 겪습니다.”

그에게 나무는 우연히 다가왔다. 〈갈매기 조나단〉으로 유명했던 리처드 바크의 《어디인들 멀랴》를 정현종 시인의 번역으로 출간한 것을 시작으로, 정치학개론서로 유명했던 연세대 이극찬 교수가 번역한 버트런드 러셀의 《희망의 철학》을 ‘나남신서’ 첫 권으로 내며 출판사로 자리를 잡았다. 매스미디어 관련 서적을 집중적으로 출판하면서, 박경리의 소설 《김약국의 딸》과 절판됐던 《토지》를 재출판하며 베스트셀러 출판사의 명성을 얻은 조 회장은 파주 금촌에 책 창고를 신축할 때 은행 대출을 받으며 부실채권인 파주 적성의 임야 1만 5,000여 평을 떠맡게 됐다. 그냥 땅을 둘 수 없어 느티나무, 메타세쿼이아 묘목을 심었지만 모두 죽었다. 물이 많은 토양이었다. 죽은 나무에 너무 미안했다. 그것을 경험 삼아 나무를 공부하기 시작해 서산, 태안 등에 임야를 구입해 나무를 본격적으로 가꾸기 시작했다.

나남수목원은 포천의 깊숙한 장소에 자리 잡고 있다. 조 회장은 개발되지 않을 땅을 찾아 전국을 헤맨 끝에 이곳을 발견했다. 개발되지 않는다는 것은 도로 등으로 수용당해 자신이 정성을 들여 가꾼 나무가 파헤쳐지는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항아리 모양의 계곡이 입구에 있고 100년 가까운 산뽕나무와 팥배나무, 산벚나무, 쪽동백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룬 임야를 확보한 조 회장은 전국의 수목원을 돌며 본격적인 공부를 했다. 산림경영계획을 허가받아 잡목을 벌채해 반송과 헛개나무, 엄나무, 밤나무, 모과나무 등을 옮겨 심었다. 수목원 한쪽에는 책 박물관도 건축 중이고, 문인들을 위한 집필 공간도 마련 중이다.

“나무를 심어 숲을 가꾸면 우선 심리적인 건강이 찾아옵니다. 무념무상의 시간이, 지친 정신에 활력을 불어넣어 줍니다. 또 귀한 나무는 일부러 변두리, 험한 곳에 심어요. 그것을 가꾸기 위해 오르내리면서 육체적인 건강도 갖게 됩니다.”

평생 병원 신세를 지지 않을 만큼 건강했던 그는 3년 전 통풍을 앓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는 손수 키운 물푸레나무의 껍질을 달여먹기 시작했다.

 

“스스로 인체 실험을 하고 있어요. 물푸레나무 덕인지 이제 통풍을 잊어버리고 살아요, 하하핫.”

그는 나무 향기를 좋아한다. 수목원 입구에 향기가 좋은 계수나무를 몇 그루 심었고, 향기 짙은 대왕참나무도 심어 놓고 아침 인사하기를 즐긴다.

언론과 출판계의 ‘의병장’을 자처해 온 조 회장은 나남수목원을 함께 공유하는 3,000명의 회원을 모으려 한다. 

 

“의병은 그 시대의 역동입니다. 그들은 진정한 역사와 사회발전의 주인공이었어요. 자연은 개인이 소유할 수 없어요. 소유의 욕심만 던져 버리면 편안하게 자연생활을 즐길 수 있어요.” 

 

수목원을 중심으로 그는 새로운 의병장을 꿈꾸고 있다.

광주고 다닐 때 강연에서 조지훈 선생을 먼발치에서 본 조 회장은 자신의 아들 이름을 지훈으로 짓고, 14년 전부터 지훈문학상과 지훈학술상을 제정하여 운영하고 있다. 그의 고집스러움이다. 그래서일까? 나남수목원 정상에 오르면 나지막한 반송나무가 3,000여 그루 심어져 있다. 

 

“비록 천천히 자라지만 옹골차게 자라는 모습이 좋아요.”

글ㆍ사진 |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영상 | 이규호 피디 pd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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