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자작나무가 되다
작성일 : 2025-10-14   조회수 : 182

그의 지인들 중에서 나는 그가 그토록 정성을 다해 가꾸어온 그 숲에 아마 가장 많이 찾아간 편이었을 것이다.

그와 나는 책을 펴내는 일로 인연을 맺은 후 10년에 걸쳐 7권의 책을 함께 만들어 세상에 내놓았다. 나는 저자였고 그는 출판사 대표였다그의 삶은 두 개의 큰 바퀴로 굴러가는 수레와 같았다그의 사회적 얼굴은 책을 만드는 출판인이었다. 그의 개인적 모습은 자나 깨나 오로지 숲을 가꾸고 나무를 심어 돌보는 일이 대부분이었다그가 가진 두 개의 면모 중에 사실상 그의 머리와 가슴속이 온통 숲과 나무로 가득 차 있다는 걸 느끼고 이해하게 되면서, 내가 그를 바라보는 시선도 언제부턴가 초점이 달라졌다그의 삶은 한마디로 나무 가꾸기였다. 그러면서 그는 세월이 흐를수록 나무를 닮아갔다. 그의 겉모습은 동動的이지만 그의 내면은 나무처럼 정靜的이다. 온통 나무처럼 숲처럼 바뀌어 가는 그의 내면이 마침내 넘쳐흘러서 내게로 전해졌다.

 

어느 날 그의 숲으로 또 불쑥 찾아간 나를 그는 흔쾌히 반겼다. 그리고 나를 옆에 태우고는 숲 위쪽에 새로 심은 어린 자작나무 10만 그루를 보러 가자고 했다. 나를 대하는 그의 행동에서 그가 나를 각별하게 맞이한다는 걸 금방 느꼈다. 그는 지리산의 자연과 더불어 사는 내가 나무와 숲을 다른 사람들에 비해 한층 친밀하게 받아들일 것이라고 믿는 모양이었다. 자작나무들을 좀 더 자상히 보여 주고 싶은 방문객이라는 걸 알고 있는 듯이 나를 대했다숲 위쪽 길은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을 만큼 좁고 가파른 비포장 흙길이었다. 비라도 내리면 다니기 고약한 진창이 되고 마는 산길이었다. 그날 비는 오지 않았지만 흙과 모래와 잔돌이 뒤섞인 그 길은 만만치 않았다. 더구나 길은 구불구불 휘어 있었다. 차가 올라채는 도중에 자주 바퀴가 헛돌면서 뒤뚱거렸다훗날 나 혼자 그 숲에 다시 오르려다가 바퀴가 빠져 헛도는 바람에 겨우 벗어난 일이 생각났다. 그 길을 다닐 수 있는 건 그 양반과 작업 트럭뿐이었다.

 

긴장감을 겨우 풀 만한 어느 지점에서 그가 차를 멈추고는 나에게 빙긋이 웃으며 물었다.

어이! 당신 눈에 자작나무가 보여?”

그가 가리킨 건너편 산자락에서 내 눈에는 웃자란 풀들만 보였다. 도대체 뭘 보라는 것인지 어느 게 자작나무인지 전혀 식별되지 않았다.

? 지금 자작나무가 눈앞에 있다구요? 내 눈엔 풀밖에 안 보이는데.”

그는 껄껄 웃더니 말했다.

잘 봐! 저기 작은 신우대 보이지? 그 신우대에 묶어 놓은 게 바로 새로 심은 자작나무 5만 그루일세.”

설명을 듣고 자세히 바라보니 신우대는 겨우 눈에 들어왔다.

아아! 신우대는 보입니다. 근데 그냥 풀인데요?”

하하하! 그게 자작나무 어린 모종이야! 싹을 틔운 직후엔 풀과 똑같이 생겨서 다른 잡초들과 구별이 어렵거든. 애써 심었는데 잡초 제거하려다가 모종까지 없애 버릴까 봐 일일이 한 포기, 한 포기마다 신우대를 받쳐 지탱하고 구별하도록 작업한 걸세.”

 

신우대라면 나도 꼬마 시절에 한쪽 끝에 못을 꽂아 넣고 꽁꽁 동여매서 개구리 잡는 화살로 사용했던 추억이 있다. 나에게는 인생 초창기에 처음 만나 알게 된 대나무를 닮은 식물이었다하지만 자작나무는 중학교 시절에 단체 관람했던 영화 닥터 지바고의 명장면 속에 등장하는 러시아의 울창한 자작나무숲이 강렬하게 각인되어, 창백한 하얀 껍질과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키 큰 나무로만 알고 지냈다. 70살이 넘은 오늘에야 자작나무의 어린 시절이 풀과 똑같다는 걸 새로 알게 되었으니, 이 목격은 나에게 매우 신선한 충격이었다그리고 깨달았다. 저토록 여린 풀 한 포기가 온갖 비바람 눈보라에 그대로 노출된 채, 뭐라고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인忍苦의 시간을 겪으며 당당하게 우뚝 선 자작나무 성成木이 되다니나의 인생길도 자작나무와 같다는 것을 매우 인상 깊게 배우게 된 것이었다또한 깨우쳤다. 다른 인생이 살아가는 모습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들의 눈에는 한낱 미친 중노동 같은 자작나무 돌보기, 이 선배에게는 왜 삶의 전부가 되었을까 하는 헤아림이 강하게 솟구쳤다누가 시키는 일도 아니고, 살아갈 날이 넉넉하게 남아 있지도 않은 마당에 나중에 짭짤한 수입을 꾀하려는 마음은 아닐 것이다. 그냥 살아 있을 때까지 삶이 허락할 때까지 숨이 주어져 있는 동안에 누가 보든 말든 알든 모르든 묵묵히 자작나무와 하나가 되어 지내는 그의 자세와 모습에, 나는 마음이 숙연해졌다. 저절로 고개가 수그려졌다.

 

자작나무의 일생이 놀라웠다. 자작나무에 모든 열정을 남김없이 아낌없이 쏟아붓는 그의 자세가 놀라웠다그를 바라보면서 그의 엄청난 수고로움과 오로지 나무와 함께 살아가는 외길을 인생의 마무리로 선택한 그의 심정을 갈수록 더 깊게 인식하게 되었다. 그것은 그와 나 사이의 인연이 예사롭지 않다는 점을 깨닫게 해 주었다그는 숲 위쪽 어느 소나무 아래에 멀리 남도 장흥 땅 선산에서 모셔온 그의 부모님 유해를 다시 정성을 다해 안장해 드렸다그리고 그 자신도 어느 날 나무 밑에서 조용히 생을 마치어 이 숲에 누웠으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고 마지막 버킷리스트를 조곤조곤 낮은 음성으로 전해 주었다.

 

나는 자작나무가 자라고 있는 그 숲에서 그와 단둘이 마주했던 어느 날 그의 절절한 유언을 듣게 된 그의 인생길 동행자였다나보다 다섯 살 위인 그의 내면은 내가 느끼기에는 자작나무 어린 모종이나 다름없다고, 그렇게 늘 초록빛이라고 나는 인증할 수 있다그는 나의 인생길에서 만나 가장 깊은 인연을 맺은 몇 손가락 안에 꼽을 만한 도道伴이다. 그와 내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나남출판사를 이끌어 가는 그의 이름 석 자는 조상호이다나는 그와 함께 그리고 자작나무와 함께 책 속에 숲속에 영원히 남고 싶어서 이 글로 이 책의 마지막을 삼는다.

 

 

사진_269.jpg

 

 

구영회 저, 《강 건너에는》 264~2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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