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송 순치기에 봄날은 간다
작성일 : 2025-05-08   조회수 : 202

화사한 봄을 알리는 진달래의 분홍 꽃망울이 가지 않으려고 서성거리던 회색의 겨울 끝자락을 밀어낸다. 히어리, 생강나무, 산수유도 노란 왕관 같은 꽃들을 터트리며 봄을 마중한다. 봄은 노란색으로 온다. 도시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콘크리트 옹벽 위나 아파트 담장의 개나리의 노란 꽃으로 이를 대신할 것이다.

수목원 호수의 얼음이 녹고 나면 한국 특산식물로 보호받는 어렵게 구한 미선나무 한 그루가 2년째 가녀린 줄기에 열차처럼 줄지어 피어나는 앙증스러운 하얀 꽃으로 제일 먼저 봄을 연다. 가느다란 여인의 몸매에 하얀 꽃들을 흐드러지게 이고 있는 모습에서 찬란한 봄을 기대해도 좋다. 미선나무는 꽃이 아름다운 부채(美扇) 또는 부채꼬리(尾扇)를 닮았다 해서 그 이름을 얻었다.

다른 나무들이 새잎을 참새 혀만큼 준비하는 초봄에 귀룽나무는 어느 날 갑자기 녹색 잎을 왕성하게 쏟아내 새봄에 벌써 녹색의 그늘을 선물한다. 꽃도 일찍 피워내 한겨울 굶주렸던 벌 나비들에게 꿀을 주는 모습이 어머니의 넉넉한 마음을 닮았다.

상사화는 봄이 시작되자마자 제일 먼저 수선화잎 두세 배의 굵은 잎을 낸다. 혼자 열연하는 싱싱한 초록의 향연이다. 다른 꽃들이 꽃동네를 다툴 때면 벌써 잎이 말라붙어 자취를 감춘다. 장마가 시작되기 전 한여름 그 자리에 갑자기 굵은 꽃대 하나가 우뚝 솟아 아름다운 연분홍 꽃을 피운다. 잎과 꽃이 서로 보지 못하고 그리워할 뿐이라는 안타까움으로 상사화(相思花)라는 이름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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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드러지게 피어난 한국 토종 미선나무의 봄날.

  

 

2020년 가을, 40년 동안 반송을 아름답게 키운 초롱농원 민 사장의 훈수를 받아 애지중지하며 다듬던 반송의 키를 낮추기 위해 큰 가지까지 베어내며 처음으로 강력하게 전지했다. 나무마다 1/3 정도를 쳐낸 셈이다. 수목원에서 10년을 뿌리 내려 제법 청년 티가 보일 만큼 잘 자라서 이만한 고통은 이겨낼 것으로 보였다. 우아한 초록우산 같은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나무들이 벌거벗은 채 앙상하게 겨울을 나는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보았다. 잘 견뎌내겠지 하는 마음의 응원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두세 해 농협에서 받아 쌓아둔 복합비료가 생각났다. 퇴비는 나무를 이식한 다음 해에 사용하기도 하지만, 이 비료는 딱히 용도도 없었다. 그 넓은 산에 성장촉진제로 뿌릴 엄두도 낼 수 없거니와 이제까지 그러했듯 나무는 비바람을 맞으며 자연히 커야 하기 때문이다. 안쓰러운 마음으로 해동이 되면 땅이 녹으면서 뿌리까지 거름발이 미치도록 생전 처음으로 한겨울 끝 무렵 아직 눈 덮인 언 땅에 나무 하나마다 한 주먹의 복합비료를 일일이 주기까지 했다.

반송 가지를 너무 많이 쳐냈는지 걱정했는데, 다음 해 봄에는 보란 듯이 힘차게 많은 새순을 내서 스스로 수형(樹形)을 갖춘다. 생명의 신비라고 안도하기도 하면서, 지난 10년 동안 이 땅에 깊이 뿌리내려 자생능력을 갖춘 25살의 청년이 다 되었구나 하는 뿌듯함도 새삼 느꼈다. 응급처방으로 처음 시도한 복합비료 거름 주기의 덕택인지도 모른다.


  

가지 끝마다 너댓 개의 새순이 올라온다. 그중 가운데 순은 한 자(尺) 가까이 치솟기도 한다. ‘장남 죽이기’라고 농담하며 유별나게 큰 순을 일일이 찾아 잘라내며, 나머지 작은 순들에게 영양분이 골고루 가기를 희망했다. 봄이 무르익는 윤사월이면 양수(羊水)처럼 터진 송홧가루가 노란 안개 되어 바람 따라 휘돌며 산하에 장엄한 동양화를 연출한다. 암수동체인 소나무는 다른 소나무의 송홧가루를 받아 수분(受粉)을 마치고 솔방울을 준비하느라 조용한 숲이 갑자기 술렁거리기 시작한다.

가녀린 새순에 점점이 박혔던 까만 점에서 솔잎이 난다. 이 솔잎이 펴지기 전에 순치기를 해야 일도 수월하고 나무 성장에도 좋을 것이다. 순치기는 우듬지의 성장 부분을 일일이 잘라내는 일이다. 한 해 가을까지 성장하는 다른 나무들과는 달리 칠팔월까지만 성장하는 소나무에게 잎을 키울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서이다. 햇볕길과 바람길 확보를 위한 가지치기는 한두 해를 건너뛰어도 무방하다고 하지만, 이 순치기만은 매년 부지런을 떨어야 내가 바라는 초록 우산의 수형을 만들 수 있다.

반송을 어떤 수형으로 가꿀 것인가는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주관적 취향이라는 사치를 위해 반송의 ‘다박솔’이라는 자연스러운 수형을 사람 눈에 귀하게 보이기 위해 다듬는 것은 나무에게는 의도적 폭력일 수도 있다. 인간 사회의 구조조정이라면 얼마나 시끄러웠을지 모르지만 나무는 말대꾸도 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오랜 동안 또는 마지막까지 이렇게 손이 많이 갈 수밖에 없는 반송 만들기 구조여서인지 반송은 귀한 대접을 받는 나무가 되는지도 모른다.


  

이제부터 내가 바빠지기 시작한다. 3,300그루 반송 한 그루 한 그루를 순치기와 가지치기하는 작업은 대장정에 다름 아니다. 나무가 성장할수록 새순도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져서 더욱 손이 많이 갈 수밖에 없다. 이제는 내 키를 훌쩍 넘어 사다리를 사용해야 되는 일은 말할 것도 없고, 비탈진 언덕에 사다리를 고정시켜 일하는 것도 녹록지 않아 자꾸 일이 더뎌질 수밖에 없다. 그래도 1년 조금 넘게 부지런을 떨면 반송 전체를 한 번씩을 만져줄 수는 있다. 물론 뒤돌아서면 이 일을 또다시 시작해야 하는 순환의 열차에 다시 올라탄 나를 발견한다. 항상 반송 밭에 살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 와중에도 25살 청년이 된 반송의 수피가 곳곳에서 벗겨지면서 감추어져 있던 황장목의 아름다움이 살아난다. 반송나무 숲이 화려한 왕족들의 공간으로 변한 듯하다. 자작나무가 스스로 수피를 벗겨내는 감동은 이미 이전에 경험했지만 뱀이 허물을 벗으며 성장하듯이 반송들도 수피를 떨쳐내며 성장하는 현장을 보는 기쁨도 있다.


  

반송의 수형을 잡는 일도 그렇다. 이제까지는 내가 바라는 수형대로 키우기 위해 주로 이에 맞추어 축 늘어진 가지를 쳐내는 일이 우선이었다. 민 사장의 조언대로 처음으로 늘어진 가지를 자르지 않고 굵은 노끈으로 원하는 수형대로 윗가지에 묶어 올리거나, 치켜뜬 가지는 노끈으로 당겨 쇠꼬챙이를 땅에 박아 묶었다. 인위적인 이런 작업으로 한두 해는 앞당겨서 원하는 수형을 볼 수 있다는데 이 일은 더욱 힘들었다.

전체 반송의 1/3인 천여 그루를 하나하나 점호하듯이 묶으며 살펴야 했기 때문이다. 키로만 올라갔던 나무가 제법 좌우 균형을 갖춘 수형으로 펼쳐진 나무가 될 것을 상상만 해도 벌써 흐뭇해진다. 이 노끈 줄이 한두 해 견디다 썩을 때면 나무는 내가 꿈꾸는 수형대로 성장한 뒤일 것이다.


  

2021년 한 해 동안 강력하게 전지한 반송의 성장을 지켜보다가 복합비료 거름 주기의 유혹에 다시 흔들렸다. 초록의 녹음으로 뒤덮인 예전의 반송을 다시 보고 싶은 조바심이었을 것이다. 2022년 초에는 설날이 지나자마자 이웃 동네에 배급되는 소량의 복합비료까지 긁어모아 반송 밭에 두 번째 거름 주기에 나섰다. 봄이 무르익자 의도하지 않았던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지난해의 거름기까지 섞였는지 반송 새순들이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치솟았다. 저 새순들에서 솔잎이 피어나면 10년 동안 정성 들여 만든 수형이 망가지는 것은 둘째치고, 가지들이 그 무개를 견뎌낼까 걱정이 앞섰다.


  

5월 송홧가루를 털어내고 솔잎이 피기 시작할 무렵 새로운 방법의 새순치기를 시도했다. 중장비 불도저의 바가지에 사람을 올려 태우고 기계톱으로 새순을 7할 정도 잘라내는 ‘삭발’작업이 그것이다. 비탈진 곳에 사다리를 세우고 일하기도 쉽지 않고, 나무가 커지고 숱도 많아져 이 방법밖에 없었다. 불도저로 새 길을 내며 3,300그루의 반송을 공중곡예로 새순을 치는 약간은 위험한 이 일은 한 달이 더 걸렸다. 그제야 부쩍 커진 초록우산 모양의 반송들이 유별나게 싱싱하고 단정한 모습으로 녹색 융단을 펼친 듯한 장관을 이루었다.

이제는 내가 나설 차례다. 곁가지와 속가지들을 일일이 솎아내 바람길과 햇볕길을 내는 연례행사를 치러야 한다. 겨울 폭설 때의 눈이 미끄러져 나갈 공간도 미리 염려해야 한다. 해마다 하는 일이지만 금년은 나무가 커져 손길이 가야 할 곳이 많아선지 일은 더욱 더뎌졌다.

마침 여름이 끝나면서부터는 정년퇴직한 시청 박남중 산림과장이 소일 삼아 반송전지를 배우겠다며 수요일, 금요일에 수목원을 찾기 시작했다. 그이는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30여 년간 수목원 이웃동네에 밭농사, 주목키우기를 해왔던 부지런하고 신실한 사람이어서인지 나무 다듬는 손길이 예사롭지 않다. 이렇게 편하게 안착하는 것은 수목원을 시작하면서부터 10여 년을 서로 교유했던 우정의 폭도 컸기 때문이다.

토요일에는 수목원 책박물관과 인포메이션센터를 설계했던 홍성천 건축가가 6, 7년의 내공으로 가지치기를 계속 돕고 있다. 손질한 나무의 얼굴을 기억할 만큼 정을 쏟는 열정이 너무 순수한 것 같아 흐뭇하다. 두세 해 전부터는 바둑에 눈을 뜨게 해서 즐거운 점심대국으로 고마움을 전하고 있다. 바둑공부도 따로 하는지 나무 크듯이 실력도 늘어 이제는 내게 3점 접바둑으로 짱짱하게 견디고 있다. 아내도 이 시간만이라도 내가 쉬는 시간으로 삼으라고 어떤 후원을 하는 눈치다. (2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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