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송 수목장의 아침 | |
|---|---|
| 작성일 : 2025-05-07 조회수 : 216 | |
|
5년 전부터 매주 수·금·토요일은 수목원에서 일하는 날이다. 월·화·목요일은 출판사 일을 해야 한다. 수익이 없이 계속 투자만 하는 수목원의 묘목값을 벌기 위한다고 둘러대기도 하지만, 책 속에 묻힐 때가 가장 편하다는 40년 넘는 습관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 앞으로는 저희들이 다 해야 하겠지만 젊은이들의 원고 처리속도가 답답하기도 하고, 고황(膏)에 든 것처럼 출판 일에 중독된 노파심이 책 원고를 보게 한다.
일흔을 넘으면서 몸에 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으로 새벽에 생긴 맑은 시간을 선용하는 뜻도 있었다.
지난주부터 인수전 앞 반송시범단지 2천 평 잔디밭을 깎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려고 잔디깎이 자동차를 움직였다. 해질 무렵 2시간 동안은 우선 뜨겁지 않아서 좋았다. 직원들이 퇴근한 적막강산(寂寞江山)에서 혼자서 부지런을 떨며 잔디 깎는 경험도 처음이었다. 어둠이 슬금슬금 내릴 때까지 절반 정도를 해치웠다. 장마철에 웃자란 잡초들을 모두 깎아내자 반기는 녹색 융단이 펼쳐진 잔디밭의 고즈넉한 평화에 보람이 있었다.
2년 만에 착근한 근사한 잔디밭 위에 우뚝 선 반송들이 훨씬 고급스러워 보였다. 어렵게 생각했지만 과감하게 저질렀던 2천 평의 잔디밭 조성은 잘한 일 중의 하나다. 산속의 반송들이 잔디를 입히자 기품 있는 정원으로 바뀌는 마법을 부렸기 때문이다.
다음 날 여명의 눈동자에 어둠이 쫓겨가자 미처 못다 한 잔디 깎기를 서두르며 새벽길을 나섰다. 하지가 지난 지 한 달 가까이 되자 5시가 넘어서야 날이 밝는다. 우선 조부모님과 부모님을 모신 큰 반송 아래 잔디밭부터 깎기 시작했다. 다음 날이 30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 기일이기도 했다. 지난해 돌아가신 어머니를 수목원에 수목장(樹木葬)으로 모시면서 아버지를 합장하고, 조부모님들도 함께 모셔왔다.
이곳은 인수전 앞 호숫가 오른편에 마련한 우리 형제들의 고즈넉한 성지(聖地)였다. 어쩌면 내가 창설한 한양 조씨 산서공파 포천 종중의 모태이기도 하다.
2021년 6월 부모님께 수목원을 바치는 수목장 현장에 함께한 여러분들이 조의를 표하면서도 이렇게 좋은 자리에 모신 부모님에 대한 부러움도 같이하며, 나의 효행을 말하기도 했다. 그중 두 분의 이야기가 오래 기억되었다.
한양대 박사과정을 지도했던 아흔 살이 된 이강수 교수가 10년 동안 수목원을 못 와봤다며 어머니 수목장에 자리를 같이해 행사를 유심히 지켜본 모양이다. 다음 해 1월 사모님께서 갑자기 돌아가시자 나를 찾았다. 당신의 뜻도 확고했지만 30년 넘게 보아온 이수영 서강대 교수를 비롯해 온 가족이 박사인 선비 집안 자제들의 효심도 존중해 한양 조씨 종중 땅에 수목장으로 모시게 되었다. 이강수 교수는 여러 해 동안 고향 전북 남원에 조성했던 선산까지 수목장으로 옮기겠다며 주변의 반송 두세 그루를 미리 찜해 놓기도 했다.
2022년 6·25날에는 지난 3월 1일에 106세로 돌아가신 김병기 화백의 수목장이 수목원에서 있었다.
코로나 사태로 2년 동안 중단되었던 제20회 ‘지훈상’ 시상식을 5월 14일(토요일) 수목원 책박물관 앞 잔디밭에서 열었다. 30년 넘게 친교하는 김형국 박사가 축사를 했다. 내가 조지훈 시인의 ‘혈통이 아닌 법통을 잇는다’는 격려가 고마웠다. 대작 〈박경리 이야기〉 출간으로 출판사를 자주 출입하던 김 박사가 작년 어머니 수목장이 인상 깊었다며 문화예술인을 모시는 주춧돌로 김병기 화백의 수목장을 협의했다. 저간의 경과는 다음 신문기사가 잘 말해 준다.
“김병기 화백 나남수목원 반송숲에 잠들다”
2016년 4월 ‘만 100세의 현역 화가’ 김병기 화백의 회고전 ‘백세청풍’(百世淸風)이 서울에서 열렸다. 전시의 부제는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의 <해변의 묘지>에서 따온 ‘바람이 일어나다’였다. 100년 동안의 바람으로 100세에 신작으로 개인전을 여는 화가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김형국 교수는 한국 현대미술의 프로메테우스인 김병기의 삶과 예술을 살피는 역작 <바람이 일어나다>라는 평전을 2년 후에 출판했다.
김병기 화백의 아들 김청윤 작가가 기증한 우람한 조각 〈기도〉의 근육질 강판이 풍기는 서구적 조형미가 고즈넉한 전통 한옥 ‘인수전’과 묘하게 어울렸다. 초록 잔디밭에 우뚝 선 간절한 기도를 올리는 조각상은 하늘을 향해 솟구친 뻘건 용암이 식어서 굳어 있는 것처럼 윤기 있는 검은 색이 이른 아침의 부드러운 햇살에 더욱 선명했다.
“민빠이가 방금 갔네!”
조선일보 강천석 전 주필의 기가 찬 듯 허탈한 전화였다. 40년 가까이 한 언론사에 같이 지낸 후배의 마지막을 지켜보는 회한을 억지로 누르려는 안쓰러움 이상의 목소리에 눈물이 묻어났다.
목요일 늦은 오후 4일간의 설날 연휴를 맞아 광릉집으로 가는 수도권순환고속도로 위에서였다. 보통 강 주필과 섣달 그믐쯤의 전화는, 이제는 세월이 내리꽂히는 폭포에 거슬러 올라갈 마음의 여유도 없어, 짐짓 유쾌한 목소리로 새해에도 건강하자는 덕담을 나누는 작은 위안이 계절의 감각이 된 지 제법 되었다. 책을 읽다 보면 더욱 침침해지는 눈꺼풀을 자주 비비게 되고, 귀도 닫히는지 작아지는 소리를 모아 보려고 귀를 쫑긋 세워야 하는데, 연부역강해야 할 후배가 먼저 갔다는 부음 소식을 받았다.
김민배 사장은 10년 가까운 대학후배이다. 조선일보 사회부장으로 활약하다가 TV조선 사장으로 큰 꿈을 이루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우리 모두가 우울했던 마스크 쓴 비대면 시대의 흐름을 잘 읽어낸 ‘미스트롯’, ‘미스터트롯’을 기획하여 장안을 흔들었다. 종편방송 4개사 중 유일하게 큰 흑자를 내 창사 10년 만에 주주들에게 큰 배당을 할 수 있었다고 기뻐했다. 잠시 투병 중일 때에도 몸조리를 잘하면 떨쳐 일어나 읽고 싶은 책들을 맘껏 읽으리라고 희망차게 말하던 그였다.
이렇게 갑자기 가다니 가슴이 먹먹했다. 섣달그믐의 안타까움이나 회한이 피어날 사이도 없는 적막강산의 침묵으로 얼어붙었다. 한동안 회색빛 풍경만이 아무 의미 없이 고속으로 차창을 스쳐갔을 것이다.
“나남수목원에 묻히고 싶다고 했대!”
이 말이 환청처럼 맴돌고 나는 갑자기 바빠졌다.
설날 다음 날 정월 초이틀에 그이 모습을 닮은 건장한 반송 한 그루를 찾았다. 꽁꽁 얼어붙은 땅을 하루종일 힘들게 뚫었다. 후배를 모실 줄은 생각도 못 해선지 이런저런 생각에 자꾸 일손이 늦어졌다. 그렇게 그는 수목원에 잠들었다. 고향 진도 앞바다 울돌목의 회오리치는 파도 소리를 여기서 듣는지는 모를 일이다. 만권당(萬卷堂)을 꿈꾸었던 그의 책들도 책박물관 2층 아카이브에 자리를 잡았다.
지난 주말(2025.3.7.)에 KBS 사장을 지낸 양승동 후배가 대학동기인 김민배 사장을 참배하는 길에 임병걸 전 부사장도 동행했다. 그이는 띠동갑이 넘는 법대 후배로 12년 전에 수목원을 방문하여 나에게 〈세상 가장 큰 책〉이라는 시를 써준 시인이었다. 이런 메시지를 받았다.
“잠시 눈길 주지 못한 사이 부쩍 자라 의젓해진 반송들이 그저 경이로웠습니다. 이토록 어엿하게 돌보고 키우시는 선배님의 땀과 열정에도 더욱 고개 숙여집니다. 저 반송 아래 잠든 영혼들은 더 이상 무섭지도 외롭지도 않고 다시 푸른 솔로 새 삶을 이어가는 행복한 영혼들이라 생각했습니다.”
오늘의 나남수목원은 말로는 옮기기 힘든 감동이었다며 〈다시 푸르게 살리니 - 나남수목원 반송〉의 시 한 편을 주었다.
|
|
| 이전글 | 반송 순치기에 봄날은 간다 |
| 다음글 | 안도 다다오의 홋카이도 ‘대두불’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