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앞에서 우리는 모두 이카로스다
허영숙ㆍ이광수 실록소설 《태양의 천사》(전 2권) 발간
친일파 이광수. 가야마 미쓰로(香山光郞)라 창씨개명하고 자신의 선택을 합리화한 사람, 나아가 자신의 영향력을 활용해 조선인의 학도병 지원을 적극적으로 독려한 사람. 이 사실만으로도 그는 민족의 반역자였다. 그가 한때 독립운동을 했고, 우리 현대 문학사에 일획을 그었다는 점은 차라리 부차적이다. 벽초 홍명희, 육당 최남선과 함께 조선의 3대 천재라 불리던 사람의 그릇된 선택은 우리 민족 전체의 수치이자 비극이다. 일왕의 무조건 항복 소식에 눈물을 흘린 그는 일제 식민지가 천년만년 갈 줄 알았다. 반민특위에 회부됐을 때 “나는 민족을 위해 부득이 친일을 했다”고 말하자 같이 연행된 최린이 “입 닥쳐”라고 했다는 일화는 씁쓸한 블랙코미디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그런데 정말, 이것으로 충분한가. 그에 대한 이야기는 더 이상 할 필요가 없는 것일까. 한 사람을 악마로 치부하는 것은 편하고 쉬운 일이다. 그만큼 무책임한 일이기도 하다. 우리는 아직 인간 이광수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지 않았다. 친일을 했느냐 안 했느냐의 단순한 이분법에서 벗어나 질문을 다시 던져볼 필요가 있다. 그는 왜 그런 선택을 했는가. 한 인물의 내면 풍경을 들여다봄으로써 인간에 대한 이해를 넓혀나가는 일, 그것이 문학이 해야 할 일이다.
《태양의 천사》는 연애소설이다. 이광수와 신여성 허영숙 사이의 사랑이 주된 이야기이다. 허영숙의 이름이 귀에 익지 않다. 그는 조선 최초의 여성 개업의로 ‘영혜의원’을 운영하고,〈동아일보〉의 학예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무엇보다 그는 당대 최고의 문사 춘원과 뜨거운 사랑을 나눈 신여성이었다. 이미 아내가 있던 춘원과 중국 북경으로 사랑의 도피를 하기도 했으니, 벌써 한 세기 전의 일이다. 작중에서 허영숙은 자신을 밀랍 날개를 단 천사로, 춘원을 태양으로 묘사한다. 상대방에게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면 할수록 자기 자신의 한계를 여실히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랑이 아닐까. 태양을 향해 날아오르던 이카로스를 비웃는 자는 사랑을 해보지 않은 자이리라. 윤심덕과 강명화, 이애리수 같은 신여성들의 비극은 죽음을 무릅쓰게 만드는 사랑의 속성을 보여준다. 작중에서 춘원이 자주 하는 말처럼, “사랑, 그것 참 위대한 것”이 아닌가.
이 위대한 사랑 앞에서 춘원 역시 한 인간이었음을 우리는 새삼스럽게 확인하고 만다. 한 역사적 인물의 공과 과를 모두 따져 객관적인 평가를 하자는 말이 아니다. ‘사람은 사람’이라는 이 명석 판명한 사실을 다시금 상기해야 한다. 우리는 이 사실을 종종, 너무나 쉽게 잊는다. 그 결과 우리는 이광수는 이광수, 히틀러는 히틀러라는 오류에 빠진다.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법정에서 한 인간을 인간으로서 유심히 보았듯, 그래서 악의 평범성을 밝혀냈듯 우리도 그를 인간으로서 보아야 한다. 그가 그랬듯 우리도 그랬을 수 있다.
‘허영숙?이광수 실록소설’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소설이 사랑타령만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저자 김광휘의 노고로 개화기 조선의 모습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하다. 이광수와 허영숙뿐 아니라 홍명희, 최남선, 최은희, 모윤숙, 김일엽 등 근대를 연 지식인과 신여성의 목소리도 다채롭다. 부제와 표지가 보여주듯 이 소설은 이광수보다 허영숙을 전면에 내세운다. 허영숙을 비롯한 당대 여성들의 활약을 맛볼 수 있다는 점도 이 작품의 특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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