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레고메나] 루카치의 마지막 여정, 마르크스주의 존재론
매체명 : 한겨레   게재일 : 2017-11-09   조회수 : 697

루카치 죄르지의 ‘철학적 유언’
자본주의와 현실 사회주의에 맞서
‘마르크스주의 르네상스’ 추구
유물론적·역사적 존재론이 바탕


가장 확신에 찼던 공산주의자로 꼽히는 헝가리 출신 사상가 루카치 죄르지(1885~1971)는 1956년 스탈린주의에 대항한 헝가리 혁명에 참여했다. 그러나 너지 임레(1896~1958)가 주도한 혁명 정부는 소련의 침공으로 곧 무너졌고, 루마니아로 추방됐던 루카치는 간신히 처형을 모면하고 부다페스트로 돌아와 죽는 날까지 저술에 매진했다. 말년의 루카치는 마르크스주의적 입장에서 윤리의 문제를 파고드는 작업에 몰두했는데, 이를 위해선 ‘존재론’으로 그 기반을 먼저 닦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존재론과 고투를 벌인 결과물이 바로 <사회적 존재의 존재론을 위하여>(‘존재론’)다. ‘존재론’은 국내에선 <사회적 존재의 존재론>(아카넷)이란 제목으로 전체 네 권 가운데 두 권이 출간됐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또 하나의 저술이 나왔으니, <사회적 존재의 존재론을 위한 프롤레고메나>(‘프롤레고메나’)가 그것이다. 애초 초고를 함께 검토한 제자와 벗들의 비판에 응답하고자 서문 성격으로 쓰려던 글인데, 어느덧 그가 추구하는 ‘마르크스주의 존재론’을 응축해 담은, 또다른 저작이 되어버린 것이다. 최근 이 ‘프롤레고메나’가 루카치 전문가인 김경식과 전문번역가 안소현의 공역으로 국내에서 번역 출간됐다.

 
<소설의 이론>(1916) <역사와 계급의식>(1923) 등의 저작들과 달리, 루카치 말년의 저작들은 그동안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존재론’과 ‘프롤레고메나’는 80년대 중반께 독일어로 출간됐는데, 이른바 ‘포스트’ 담론이 유행을 타던 당시 서구의 지식계에서 그가 추구했던 ‘마르크스주의의 르네상스’는 별다른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두 저작의 영어 완역본은 아직도 나오지 않은 상태다. 다만 최근 들어 관련 학술 모임이 열리는 등 서구 지식계에서 루카치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일어나는 중이라 한다.

 

말년의 루카치는 왜 윤리학과 존재론에 몰두했을까? 옮긴이 김경식은 해제에서 “윤리는 루카치 일생의 사유 전체를 관통하는 문제 설정이자 전체 저작의 근저에 놓여 있는 근본적인 동인”이었으며, “줄곧 고수해온 ‘마르크스주의의 보편성’ 사상을 구체화·현실화하는 작업의 일환”이기도 하다고 짚었다. 당시 루카치는 과도하게 인식론에 치우쳐 보편적 존재에 대한 사유와 그 역사적 전망을 제거해버린 서구 자본주의 사회의 철학적 사조, 그리고 역사에 필연적 법칙을 상정하는 등 자연적 세계의 인과성을 사회적 존재에 무리하게 끼워맞춘 ‘속류’ 마르크스주의에 맞서 ‘마르크스주의 르네상스’를 주창했다.
‘프롤레고메나’에서 루카치는 무기적 자연, 유기적 자연, 사회라는 세 가지 큰 존재양식을 먼저 제시하고, 이것들은 서로 얽히고설킨 채 “모든 사회적 존재의 불변의 기초”가 되며 인간의 “실천과 사고의 출발점”을 이룬다고 말한다. 그가 특히 강조하는 것은, ‘인과율’로 움직이는 자연과 ‘목적론’으로 움직이는 사회는 서로 얽히고설킨 채 동시에 인간의 존재양식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이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인간은 언제나 사회적 존재인 동시에 자연적 존재다. 게다가 그 동시적 존재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과정으로서 존재한다. “역사의 과정은 (…) 다층적이지 결코 일면적이거나 단선적이지 않고, 언제나 그때그때 활동적인 복합체들의 실재적인 상호작용 및 상호관계에 의해 작동되는 하나의 발전경향”이란 것이다.

 

존재양식에 대한 고찰로 시작한 루카치의 존재론은, 실천으로서의 노동, 인과성과 목적론, 우연성과 필연성 등등의 구체적인 주제들로 나아간다. 핵심에는 ‘노동’ 개념이 있다. 인간은 ‘실천’을 통해 자신의 환경에 대해 능동적인 대응을 꾀하는데, 이것을 ‘목적론적 정립’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현실은 결코 목적론적으로 작용하지 않으며, 오직 인과적으로만 작동할 뿐이다. 이를 결합시킬 수 있는 것이 바로 실천으로서 인간의 노동이다. “마르크스의 비판은 존재론적인 비판이다. 그것은 환경에 대한 인간의 능동적 적응으로서의 사회적 존재가 근본적으로,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실천’에 의거한다는 데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이 존재의 모든 현실적이고 중요한 특징은 이런 실천의 전제조건, 본질, 결과 등등의 진정한 존재적 성질을 존재론적으로 탐구함으로써만 파악될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마르크스주의적 존재론의 기반을 갖추지 못한 서구 부르주아 사회는 ‘신실증주의’에 빠져 자본주의적인 삶의 양식만을 재생산하는 ‘부드러운 조작’ 사회가 됐다는 것이 루카치의 비판이다. 스탈린주의가 득세한 이른바 ‘현실 사회주의’ 역시 그 부실한 존재론적 기반 때문에 ‘변증법적 유물론’처럼 마르크스주의에 목적론적 역사철학을 꿰어맞추는 왜곡을 저질렀다고 본다. 이에 따라 폭력을 앞세워 “경제적 과정을 일종의 ‘제2의 자연’으로 만드는” 등의 ‘난폭한 조작’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난해한 개념과 서술로 빽빽한 책이지만, ‘존재론’ 집필 당시 루카치의 인터뷰에서 그의 생각을 좀 더 쉽게 읽어낼 수 있다. “노동은 인간의 자유를 나타낸다. 그러나 이 자유는 물질세계의 인과법칙을 따르는 객관적인 물리적 힘을 작동시킴으로써만 존재한다. (…) 사회주의는 역사상 최초로 그 체제에 적합한 ‘경제적 인간’을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내지 않는 경제 형성체”(<좌파로 살다>, 사계절) 등의 말에는 역사와 환경을 변화시키는 인간의 실천에 대한 믿음이 담겨 있다. 옮긴이는 해제에서 “루카치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두 체제가 공히 위기에 봉착한 상황 속에서, 스탈린주의로 만신창이가 된 마르크스주의를 보편적인 조작과 소외를 극복할 수 있는 이론적 힘과 파토스를 지닌 진정한 마르크스주의로 재구축하고자 시도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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